본격 조정인가 매수 기회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역시 미국이었다. 1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 급락의 키워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쇠퇴'였다. 세계 최고 부자나라가 증시에서 돈을 거둬갈 거라는 두려움이 급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외국인은 13일째 매도 공세를 폈다. 여기에 프로그램 순매도까지 겹치면서 낙폭을 키웠다. 지난달 27일 '검은 금요일'의 쇼크를 회복하고 기력을 찾아가던 증시는 다시 주저앉았다. 연 이은 '펀치'에 시장의 '맷집'도 약해지는 모양세다. 지수 급락을 매수 기회라며 되레 반기던 모습은 사라졌다. CJ투자증권 정현덕 과장은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없다"며 "시장이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팔자' vs 개인은 '사자'=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서 지난달 31일 미국 증시는 1% 이상 하락했다. 그 여파는 1일 아시아 시장을 강타했다. 대만이 4.26% 급락한 것을 비롯, 지난 1차 신용경색 우려에 독야청청했던 중국도 이번엔 4% 가까이 급락했다.

외국인은 이날도 5273억원어치를 팔았다. 지난달 순매도 금액은 4조8462억원. 월간 단위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증시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신흥 시장에서의 비중 조절,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진 국내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14.1배) 등 이유는 많다. 게다가 한국은 주식을 팔기도 쉽다.

이날 급락을 부추긴 것은 프로그램 매도다. 이날 차익 순매도금액은 7354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차익거래란 선물과 현물에 가격 차가 발생하면 싼 걸 사고 비싼 걸 파는 기계적 거래를 말한다. 시장에서 선물이 싸고 현물이 비싼 상태가 이어지면서, 프로그램이 현물을 쏟아내자 지수가 급락했다.

그래도 여전히 개인은 '사자'에 나섰다. 이날만 583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순매수액으로는 사상 세 번째 규모다. 개인의 투자 열기를 방증하듯 지난달 말 현재 활동계좌 수는 1000만 개를 돌파했다. 펀드로도 돈이 몰렸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3940억원이 주식형 펀드로 유입됐다. 전날에는 8482억원이 몰렸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 vs '저가 매수 기회'=지난달 27일 지수가 80포인트 급락했을 때는 증권사 지점마다 매수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대우증권 박희명 압구정지점장은 "개인투자자의 관망세가 뚜렷해졌다"며 "조정 폭과 기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장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투매에 동참하지도 않지만 적극 매수에 나서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다만 펀드 투자의 경우엔 장기투자자가 많아 환매보다는 가입 문의가 더 많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당분간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증권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부분적인 차익 실현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1800선 초반까지 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메리츠증권 심재엽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증시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굿모닝신한증권 김중현 연구원은 "조선.철강.운송 등 실적 호전 업종을 중심으로 저가 매수에 나서는 전략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동부증권 임동민 연구원도 "많이 하락한 우량주 중심으로 나눠서 사들일 것"을 조언했다.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