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장사실 대대장에 보고”/정규형 당시 하사 일문일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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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교도소 접근하면 무조건 사살 명령/암매장 장소 아무 표시도 않고 철수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3공수여단화기담당하사관으로 광주에 투입돼 광주교도소앞에서 시민을 사살,직접 암매장했다고 증언한 정규형씨(37)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당시 정 하사가 맡았던 임무는.
『23일 오전 중대장으로부터 「접근하는 자는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관측소에서 M60 기관총을 설치,부사수 1명과 함께 경계근무중이었다.』
­시민들을 사살,암매장한 상황을 설명해달라.
『이날 낮 광주시내 방향에서 국도를 따라 교도소를 향해오던 시민들을 발견,기관총을 난사했다.』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나.
『20대 남자 1명은 직접 관측소 맞은 편에 있던 언덕에 파묻었다. 내가 사살한 나머지 3∼4명은 동료 공수부대원들이 비슷한 장소에 매장하는 것을 관측소에서 목격했다.』
­매장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했나.
『근무를 마친뒤 숙소였던 무도관에 돌아가 대대장 임수원중령에게 「낮에 접근하는 시민 수명을 사살했습니다」라고 얘기했다.』
­하사관이 대대장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는데.
『3공수여단은 1개대대 총원이 40여명으로 대대장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 보고도 휴식중 가볍게 근무결과를 이야기한 것이다.』
­대대장이 시체처리에 대해서 지시를 내리지 않았나.
『특별한 지시는 없었다. 사살에 대해서만 「개의치 말라. 수고했다」고 얘기했을 뿐 매장여부에 관한 질문조차 없었다.』
­그외 다른 암매장은 없었나.
『교도소정문을 지키던 저격수들이 관측소를 통과해 질주해가던 지프에 탔던 시민군 3∼4명을 사살,정문 맞은편 언덕에 매장하는 것을 목격했다.』
­24일 철수때 매장한 시체에 대한 조치는.
『경황이 없어서 그 장소에 내버려두고 송정리 비행장으로 떠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임수원중령은 88년 광주특위청문회에서 경계근무중 사살한 시체 2구를 가매장한 장소에 표시를 해놓고 철수때 20사단 장교에게 인계해 주었다는데.
『분명하게 그런 일은 없었다. 암매장한 장소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않았으며 당시 분위기가 시체를 수습해서 통보나 인계해줄 상황이 아니었다.』
­정씨는 이야기를 마친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얘기될때마다 언급되는 실종자문제가 늘 마음에 걸렸었다. 이제 속이 좀 후련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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