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된 심성민씨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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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살해된 고(故) 심성민(사진)씨는 고교 시절부터 "국제봉사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시각장애자인 고모 때문인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지난해 8월에도 필리핀 마닐라로 단기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평소 아프가니스탄의 열악한 교육환경에 관심을 가져 7월 출국한 봉사단에도 기꺼이 자원했다고 교회의 지인들은 전했다. 7월 13일 출국 당시 성민씨는 동생을 제외한 가족에겐 아프간에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난 심씨는 아버지 심진표(경남도의원)씨와 어머니 김미옥씨의 2남1녀 중 장남이다. 집에선 10대 종손이었다. 1997년 진주고를 졸업하고 경상대 세라믹공학과에 입학했다. 학군단(ROTC) 38기인 그는 졸업 뒤 2년 3개월간 군복무를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 그는 2달 전 일하던 경기도 성남시의 한 반도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해 왔다. 당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농업 관련 대학원에 진학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어려워진 농촌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가족들은 "신세대에 맞지않는 일"이라며 말렸으나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 취업할 무렵부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청년회에서 활동했고, 장애인 모임의 교사도 맡았다. 고향의 부모에겐 알리지 않았다.

평소 그에겐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인 고(故) 심재인씨는 1940년대 항일 결사를 조직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90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박유미 기자, 강지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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