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치 부패 오페라까지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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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탈리아 전역을 들끓게 하고 있는 정치 부정 부패 스캔들의 불똥이 오페라에까지 비화하고 있다.
오페라의 고향이라는 자부심에서 오페라는 이탈리아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 오페라극장의 오키스트라 연주자에게는「프로페소레」(교수)라는 칭호가 따를 정도로 오페라에 대한 이탈리아의 애착은 남다르다.
그러던 오페라가 정치권의 사정한파로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성악가의 공연 내용은 뒷전에 밀린 채 정치권과 결탁된 오페라 극장의 내부 갈등과 고질적 재정적자, 공금 유용 등을 둘러싼 비리들이 꼬리를 물며 터지고 있는 것이다.
2백15년의 전통을 이어오며 매년 12월7일 시작돼 이듬해 7월까지 계속되는 성암브로시우스 축제가 한창인 밀라노의 라 스칼라는 물론 전국 12개 국립극장들은 이에 따라 요즘 자구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은 극장장과 예술감독 두 총괄 책임자는 대개 정당의 낙하산 인사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 도시의 시장·오페라극장장·예술감독이 각 정당의 추천으로 선임되는 철저한 나눠먹기식 인사 관행이 뿌리를 내린탓이다. 때문에 엄청난 정부보조금·극장운영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내며 갖가지 비리의 온상으로 여겨져 왔다.
로마 오페라극장은 최근 기독 민주당을 등에 업고 취임한 극장장이 4백억리라(한화 2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직원들에게 18세기식 제복을 입히고 로비를 페르시아 카핏으로 교체, 예산 남용 문제로 말썽을 빚고 있다.
베네치아에서도 공산당 계열의 예술 감독이 공연 작품 선정을 놓고 사회당 출신의 극장장과 정면 충돌, 사임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풍족한 정부 보조금도 이탈리아 오페라가 정치권의 부패 사슬에 연결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12개 국립극장의 전체 운영 자금 중 70∼75%를 지원하고 있으나 방만한 운영으로 모두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라 스칼라의 경우 연간 3백억리라(1백50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매년 60억리라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런데도 출연료는 세계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은 출연하는 성악가와 연주자에게 영국의 코벤트 가든(로열 오페라 하우스)보다 최소한 두배 이상의 개런티를 보장한다. 라스칼라·볼로냐·피렌체 등은 3배에 달한다. 이탈리아 정부는 특급 대우의 경우 3천만리라로 상한액을 제한했으나 전혀 먹혀들지 않는 실정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작곡가인 루치아노 베리오는『라 스칼라·볼로냐·피렌체를 제외한 나머지 오페라극장은 모두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국민투표에서 관광부 폐지안이 통과됨에 따라 오페라극장 관할권이 중앙 정부에서 지방자치 단체로 옮겨져 앞으로 정치권의 입김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지난 4년 동안 정부 보조금이 10%나 삭감된 데 이어 기업체의 후원금도 중단됐다.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은 정치권의 앞으로의 입김을 차단하고 홀로서기를 통해 국민들의 사랑을 되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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