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죽음 부른 우승 축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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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시안컵 축구 우승에 흥분한 바그다드 시민과 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총을 쏘며 환호하고 있다.[바그다드 로이터=연합뉴스]

30일(한국시간) 이라크가 사상 첫 아시안컵 축구 패권을 차지하자 흥분한 국민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사람이 최소 7명, 부상자도 50명에 달한다고 이라크 내무부 관계자가 밝혔다. 총기 소유를 명예로 여기는 이라크에서는 결혼식 때도 축하의 의미로 총을 공중으로 쏘는 일이 흔해 하객들이 유탄에 맞아 숨지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이라크가 사상 처음 아시아 축구 챔피언이 된 이날은 더했다. 이라크 당국은 결승전이 열린 이날 경기시간 전후 14시간 동안 수도 바그다드 시내의 모든 차량 운행을 중단시키고 총기 발사를 금지시켰다. 대표팀이 21일 베트남을 2-0으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을 때 총기 난사로 2명이 사망했고 25일 한국과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둔 후엔 차량 폭탄테러로 50여 명이 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꺾고 이라크가 우승컵을 들어올리자 이 모든 조치가 무용지물이었다.

군인과 경찰들이 바그다드 시내 자신들의 초소 등에서 소총과 권총을 연발하며 가장 먼저 열광했고 이에 흥분한 바그다드 시민들도 건물 옥상에서 공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이라크는 축제 일색이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바그다드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며 춤을 췄고 남부 바스라에서는 군중이 색종이를 뿌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라크 TV 뉴스 캐스터는 국기를 몸에 걸친 채 울음을 터뜨렸고, CNN 방송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이라크의 승리를 신속 보도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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