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배출 모토 교수들 앞장 「작은 대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대학정신을 되찾자.』 이번엔 대학교수들이 일어섰다.
신촌에서 일기 시작한 「작은 대학운동」바람이 최근 대학가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적·도덕적·문화적으로 황폐화되고 「생각 없는 거대한 기계」로 삐걱이고 있는 대학을 살리기 위해 출범한 작은 대학은 지난달 24일 제1기생들의 논문발표회를 계기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91년10월부터 작은 대학운동을 벌여온 교수들은 박영신(연세대 사회학)·진덕규(이화여대 정치외교학)·정인재(서강대 철학)·김학수(서강대 신문방송학)·김왕식(이화여대 사회생활학)·윤여덕(서강대 사회학) 교수 등 신촌지역 3개 대학 인문·사회과학 중견교수를 비롯, 모두 17명.
작은 대학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배져나기 힘든 빡빡한 학사일정과 엄정한 학칙을 자랑한다. 29명의 1기 입학생 중에 7명만이 졸업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장 큰 예.
우선 이 대학의 수강생들은 1년간 적어도 20권의 책을 읽는다. 작은 대학인으로서 약속과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교수들과 「계약」을 한 학생들은 2주 1권 독파를 원칙으로 플라톤의『국가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칸트의 『실전이성비판』, 헤겔의 『법철학』, 마르크스 『공산당선언』 등이 포함된 필수도서 15권과 역사·현대문명론·예술 및 미학관련 선택도서 5권을 섭렵하게 된다.
20권의 책을 읽은 후엔 6개월에 걸쳐 연구논문을 작성, 역시 토론으로 진행되는 논문심사에 통과해야 졸업하게 된다.
학습시간에 교수들과 최대한 자유롭게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권리지만 수강일 3일전에 독서감상문을 제출하고 학습시간 10분전에 착석해야하는 것 등은 그들의 의무다. 무단 2회 이상 결석은 제명.
작은 대학 1기생으로 「자본주의정신과 계몽주의 세계관」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김은홍군(연세대 사회학과 93년 졸업)은 『작은 대학 수업은 학과 학사일정보다 훨씬 어렵고 벅찼지만 대학생활 중 값진 경험으로 남게됐다』고 작은 대학 참가소감을 밝혔다.
현재 2, 3기(30여명)가 활동중인 작은 대학은 그 동안 알음알음으로 학생들을 모집해온 방법을 탈피, 4기부터는 공개적으로 모집할 계획이다.
이 운동을 주도해온 박영신 교수(작은 대학 대들보)는 『그 동안 거대화된 대학교육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뜻으로 작은 대학을 조용히 꾸려왔지만 최근 교육계의 부패실상을 접하면서 대학의 가능성을 제안하기 위해 활동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은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