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정겨운 한마디 보은의 정 절로|점심짝꿍하며 생활조언…생일 땐 축하카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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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개별지도>
『엄마, 앞으로는 오이무침에 고춧가루를 조금씩 넣어먹어요.』 매운 것이라고는 전혀 입에 대려 들지 않던 국민학교 4학년짜리 딸의 얘기에 곽정란씨(36·서울 신정동)는 깜짝 놀랐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지나치게 맵고 짠 음식도 좋지 않지만 조금은 매운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 건강해진대요.』
그야 물론 곽씨 자신도 몇 차례나 해온 얘기다. 그러나 매일 그 학급 어린이와 한 명씩「점심 짝」을 정해 얼굴을 맞대고 점심도시락을 먹으며 개인적인 얘기를 나눈다는 딸의 담임선생님은 그날 곽씨의 딸과 말씨·숙제 등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서 식사습관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아무리 얘기해도 들은체 만체 하더니 선생님이 그러시니까 귀에 쏙 들어오던?』 곽씨는 딸에게 눈을 흘기면서도 선생님이 고맙기만 하다. 또 자신이 딸과 승강이하는게 성가셔 어느덧 아이 입맛에 맞춰온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이제부터라도 너무 고소하고 달콤한 음식은 해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50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일일이 개별지도하기가 어렵다는 사정이야 결혼 전 몇 년간 직접교단에 서본 곽씨가 누구보다 잘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점심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딸의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니 곽씨는 여간 고맙고 뿌듯한 게 아니다.
불량배들과 몰려다니며 빈집털이·본드흡입 등 수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소년원에 재수감될 뻔한 민호(서울 S국교 5학년)를 책임지고 바로잡겠다며 가까스로 막아낸 이순영 교사(28)는 요즘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밟고 사는 느낌이다.
수업시간에 별안간 괴성을 지르거나 마구 뛰어다녀서 몇 마디 나무라면 결석해버리는 말썽꾸러기 민호.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되는 민호를 격리시켜 달라는 학부모들에게 따른 어린이들이 피해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설득한 만큼 이 교사는 잠시도 긴장을 풀 새가 없다.
모든 어린이들에 대한 일반교과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일기 쓰기며 독서지도 등에도 남다른 성의를 쏟으면서 틈틈이 민호가 말썽을 일으킨 곳들을 쫓아다니며 뒷수습을 해야한다. 얼마 전에는 민호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듯 싶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함께 보려고 입장권을 예약했지만 결국 민호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이 교사를 또 한차례 가슴아프게 했다.
이 교사는 민호가 눈물까지 흘려가며 자신과 한 약속 때문에라도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처럼 어려운 문제아 개별지도란게 자신의 능력과 정성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이해심 내지 참을성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지라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김수련씨(38·서울 쌍문동)는 이번 스승의 날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뵐 계획으로 들떠 있는 중학교 1학년짜리 딸을 보며 내심 흐뭇한 기분이다. 카네이션이나 스타킹 같은 「보통선물」로는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존경과 사람」을 전할 수 없다는 딸. 그 선생님이 지난해 생일날 보내준 생일카드며 겨울방학 때 비닐코팅까지 해서 보내준 시를 딸은 아직도 책상 앞에 붙여놓고 있다.
선생님께서 딸에게만 그렇듯 특별한 관심을 보였더라면 선생님을 좋아하는 정도로 그쳤을 일이다. 하지만 그 선생님께서는 딸의 학급친구들 모두에게 골고루 그런 관심과 사랑과 보였기에 지금도 딸은 걸핏하면 지난해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그 선생님을 찾아가 새로 적응해야하는 중학교 생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가 하면 떡볶이를 얻어먹고 와서는 즐거워한다. 어린이들 모두가 너나없이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도록 해준데 대한 대가(?)를 치르느라 행여 그 선생님이 너무 성가실까봐 김씨는 은근히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기야 김씨조차 지금도 고향에서 실한 인삼이라든가 참기름을 보내오면 대뜸 그 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싶어지는데 직접 배운 아이들이야 오죽할건가.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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