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 벌써 잊었나요/김정빈 LA지사 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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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 로스앤젤레스 폭동 발발 1주년을 맞아 평화대회가 열린 지난달 29일 한인타운의 아드모어공원에는 ABC·NBC·CBS 등 미 주요방송의 취재차량과 내외신 기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1년전 이자리에서 한인 10만명이 운집,폭동의 참화속에서도 단합과 화해의 메시지를 울려퍼지게 했던 그 감동적인 장면을 다시 한번 보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회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인들은 1백여명밖에 오지 않았다.
주최측은 수만명정도의 한인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으며 참가자 모두가 평화의 촛불을 점화함으로써 로스앤젤레스 전시민의 가슴속에 인종화합의 영원히 이뤄지기를 기대했었다.
지난해 폭동의 최대피해자가 한인과 한인사회였고 그같은 사실을 미 주류사회도 공감하고 있었던 터였기에 보복과 대립보다는 평화와 화해를 호소하는 한인사회의 이같은 기념행사가 주목받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예측을 비껴갔다.
행사가 끝나도록 모여든 인파가 1백여명 수준을 넘지못한 것이었다.
『1년전 참상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한국사람은 이래서 안돼.』
방송사의 TV카메라맨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설치했던 장비들을 서둘러 철수하는 가운데 나온 한인들의 자조섞인 개탄이었다.
이처럼 결과는 참담하고 창피스러운 쪽으로 나타났다.
폭동으로 본 피해의 악몽에서 아직도 깨어나기가 어려워서였을까,아니면 이제는 그깟 폭동피해쯤 훌훌 털어버리고 오직 앞을 향해 달릴 수 있을 만큼 심기일전해서 였을까.
그러아 아드모어공원을 나서면서 「우리 민족은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약점을 갖고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상념이 자꾸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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