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곳마다 칼”… 전방위수사/검찰의 사정강풍 어디까지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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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회비리 16개 분야별로 척결 방침/6월까지 사법처리 대상 “줄줄이”설
김종호 전 해군참모총장·조기엽 전 해병대사령관·안영모동화은행장·김문기 전 민자당의원·허만일 전 문화부차관­.
사정바람이 불기 시작한뒤 한달여동안 대검 중수부(김태정검사장)에 구속된 「거물급」인사들 명단이다.
91년 수서비리 사건이후 휴화산상태에 들어갔던 중수부는 새정부 출범이후 눈코틀새없이 바빠졌다. 앞으로 6월까지는 사법처리를 받을 인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검찰의 사정행렬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새정부의 개혁프로그램과는 어떤 연관관계를 갖는 것일까.
검찰은 요즘 사정을 앞장서 이끌어가고 있다.
비리가 터져나오고 『검찰은 뭘하고 있는거냐』는 질타가 있고나서야 뒤치다꺼리를 하러 움직이던 과거와의 차이점이다.
○정치권도 숨죽여
수서사건·정보사부지 매각 사기사건·안기부 흑색유인물사건·한준수 연기군수 부정선거 폭로사건·징코민사건 등 6공 후반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된 사건에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하던 검찰이 새정부가 출범하고 난뒤에는 태도가 1백80도 바뀐 것이다.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게 아니라 정치권이 언제 어떻게 자신들의 비리가 파헤쳐질지 전전긍긍하는 사태도 빚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김 전 해참총장에 대한 수사과정을 보면 변화가 금세 피부에 와닿는다. 수사단서가 된 서인교대령의 투서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군 당국과 검찰에 접수됐었지만 군과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한 투서는 그동안 아무런 「약발」이 없었다. 군인사비리를 사정명단의 마지막쯤에 올려놓고 있던 검찰은 지난 24일 언론이 군비리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전격 수사에 착수,전직 해군·해병대 총수를 구속했다.
검찰은 『군의 명예를 고려하자』며 내내 조심하는 모습이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군도 성역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검찰은 해군에 이어 물의를 빚고있는 공군인사비리에도 수사에 착수했다.
정용후 전 공군참모총장과 뇌물을 준 공군장성들이 대상이다.
안영모동화은행장 수사는 군과는 다른 의미의 성역파괴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겉보기에는 「비리은행장 하나」 정도를 구속한데 불과하지만 잠재적 폭발성은 군비리 수사 못지않다.
안 행장은 가짜 영수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2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은행간부들과 나눠쓰고 수억원대의 대출커미션을 받은 혐의로 일단 구속됐으나 핵심은 관행으로 넘어가던 은행의 대출커미션 부분을 건드린 점이다.
동화은행사건의 「뇌관」은 검찰이 안 행장이 받았을 것으로 보고 추적중인 커미션의 행방이다.
○금융관행도 조사
검찰은 이중 상당액이 「6공실세」들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혐의만 드러나면 관련 정치인들을 사법처리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재산공개파동의 시범타가 된 김문기 전 의원의 경우 검찰수사가 여론의 성화에 밀린 케이스지만 의원직을 치부수단 정도로 여겨왔던 풍토가 더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의미다.
이같은 일련의 수사가 과연 청와대와 어떤 교감을 갖고 이뤄지는지는 확실치 않다.
대검 고위관계자는 『과거처럼 고위 정치권이 명단을 「찍어」내려 보내는 경우는 전혀 없다.
비리가 있으면 대상을 가리지말고 모두 파헤치라는게 유일한 주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대상이 적시되지 않고 알아서 수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어렵다는 견해도 검찰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5공당시 저질탄사건을 파헤쳤다가 『연탄을 때는 서민들에게 정부에 대한 불신을 주고 가뜩이나 어려운 탄광업계를 망하게 한다』는 반론때문에 된서리를 맞은 검찰로서는 과거의 전철을 밟게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간섭 없어
동화은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뻔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검찰이 선뜻 다른 은행으로 수사를 확대하지 못하는 것도 자칫 경제 전체를 마비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의 수사는 앞으로 사회 전분야로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군인사 비리뿐만 아니라 다른 공직사회의 인사비리도 곧 손을 볼것이며 대형 건설업체들의 하도급비리도 계획된 수사선상에 있다는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검찰은 우리사회의 비리를 16개 분야로 나눠 적어도 한부분씩은 수사를 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사정행렬이 어디에서 그칠지 알 수 없지만 행렬이 멈춘뒤의 사회는 시작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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