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서 핍박받은 미국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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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소련으로 간 미국인들-」
.미국이 대공황으로 시달리던1930년대 1만명 안팎의 미국인들이 대서양 너머 핀란드의 구석배기땅 카렐리아로 찾아들었다. 소련으로부터 들려오는 「계급없는 사회주의 낙원」건설의 망치소리에 맞춰 그곳에 사회주의 이상향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었다.
얼마 안돼 이들은 진까 소련인이 됐다. 핀란드에 대해 사실상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그곳을 아예 소련에 병합해 버린 것이었다. 지금의 카렐리아자치공화국이다.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이들은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얘기는 지난 91년말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부터 하나씩 들춰지고 있다.
앨머 누지애이넨(77). 미국미시간주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살 때인 1931년 카렐리아로의 모험이주를 결행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지금까지 자신이 들은 소련에 관한 얘기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의 소련살이는 사회주의건설이 아니라 소련탈출을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누지애이넨은 1938년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을 찾았다.
미국으로 되돌아갈 길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대사관을 떠나자마자 그는 주변에서 감시중이던 KGB요원들에게 체포됐다. 「배신자」라는 딱지가 붙여져 KGB본부 감방에서 하룻밤, 시내 부티르카감옥에서 몇주일을 시달린 그는 우탈지방 첼랴빈스크 부근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돼 8년동안 중노동을 하며 모진 세월을 보냈다.
그는 그러나 수용소군도 덕에 이제껏 목숨이나마 부지하고 있다고 자위한다.
『수용소로 보내진 것은 나에겐 오히려 행운이었다. 내 친구들은 죄다 제2차대전중 붉은 군대에 나갔다가 전사했다.』
미시간주 출신 폴 코간(68)도 마찬가지다. 열혈공산주의자인 야버지를 따라 1934년 카텔리아로 간 그는 불과 3년후인 1937년 아버지와 생이별해야 했다.
반혁명분자 색출에 혈안이 돼 있던 독재자 요시프 스탈린의 하수인들이 느닷없이 코간의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갔다. 코간은 지난 91년에 아버지가 1938년 1월8일 처형됐다는 소식을 알았다.
53년 스탈린사후 이들은 직장에 복귀하는등 여건이 다소 나아졌다. 그러나 해빙의 혜택은 용케 살아남은 몇백명의 몫일뿐이었다. 지금 카렐리아에 살고 있는 옛 미국인들은 20명정도밖에 안된다.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오지로 추방돼 눌러앉은 미국인들도 더러 있다. <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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