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ET 박석재<천문대선임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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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맥주병 1천억개가 있다고 하자. 맥주병의 굵기(지름)가 1Ocm라고 가정하면 1천억개의 맥주병으로는 한변이 30km인 정사각형의 땅을 빽빽이 채울 수 있다. 즉 서울보다 더 넓은 지역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많은 맥주병 중에서 우리가 딱 한개만을 꺼내 볼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한개를 꺼내 봤더니 맥주가 들어있었다고 치자. 나머지 병들은 모두 종이로 둘러싸여 있어 속이 보이지 않는다. 이 경우 우리는 뽑아볼 수 없는 나머지 9백99억9천9백99만9천9백99개의 맥주병이 모두 빈 병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물론 다 열어보기 전에는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은하에는 최소한 1천억개의 별이 있다. 이것은 관측되는 엄연한 사실이지 결코 어떤 인간의 믿음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허구의 값은 아니다. 태양은 그 1천억개 별 중의 하나이고 우리 지구는 그나마 그 축에도 끼지 못하는, 태양이 거느린 9개의 행성중 하나일 뿐이다.
과연 우리 은하내에서 우리 태양계만이 생명체를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의 맥주병 얘기에서 보듯 분명히「아니다」라야 한다.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을 다 고려하여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ET(외계생명체)는 어딘가에 있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ET와 서로 교신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워낙먼 까닭이다. 인류 역사가 2백만년이 넘는다고 하지만 강력한 전파를 인공적으로 발생시켜 우주 공간에 쏘아보낼 능력을 보유한 기간은채 1백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우리 지구인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주학당」에서 우리가「맹구」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우리 지구인보다 우수한 ET가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우리가 원숭이에게 가르칠 수 없는 미적분을 수학에서 논하듯이,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고도의 지성을 그들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ET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특히 우주에 대한 지식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후진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 이는 물론「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은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ET를 UFO등과 너무 쉽게 관련지어 비약시키는 비과학적인 일 또한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어쨌든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미 미국 NASA를 중심으로 ET탐색 작업에 착수하였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천문학자가 「그래도 ET는 있다」라는 말을 남기며 재판정을 나서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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