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방울 있으면 간염·癌 잡아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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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한국은 '간염 바이러스의 천국'이란 오명에 시달리고 있다. '술잔은 돌려야 제맛'이라며 밤새도록 오고가는 술잔이 바이러스의 전파에 일조한 결과 국내 만성 간질환자의 70%가 B형 간염 환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염에 걸렸는지 여부는 혈청 검사로 A.B.C 형인지 등을 알아냈다.

최근 들어서는 간염 바이러스를 유전형질로 구분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B형 바이러스를 예로 들면 a부터 f까지 6종류의 유전자형으로 세분된다. 유전자형에 따라 인터페론이나 라미부딘 등 간염치료제에 약효가 없는 종을 알아내고 다른 치료법을 찾아낼 뿐 아니라 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피 한방울과 세시간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 서울대 의대 내 암연구소에 입주한 바이오벤처기업 진매트릭스가 지난해말 개발한 질병진단용 칩이 있어 가능하다. 피한방울을 특수 처리된 금속판 위에 올려놓고 간염 바이러스만의 DNA를 추출한 뒤 질량분석기로 질량을 측정하는 시스템이다.

단백질을 활용한 질병진단용 칩도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태송 박사팀은 최근 피 한방울에 미세한 양(10억분의 1g)으로 들어있는 단백질을 전기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백질 칩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극소량으로 존재하는 단백질 생체물질이 항체가 붙어있는 단백질칩의 특정 부위에 닿게 되면 전기적인 신호로 바뀌어 30분 이내에 농도까지 알려주는 장치다. 이전까지는 단백질이 닿으면 빛을 발하는 칩이 있었으나 측정시간이나 혈약의 양이 많아야 한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김태송 박사는 "전립선암의 표지물질인 PSA로 실험한 결과 1조분의 1g까지 감지가 가능했다"며 "각종 암이나 감염성 질환 등에 대한 휴대형 진단시스템으로 1~2년 내 실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버드대 화학과에서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보다 더 미세한 나노와이어 센서가 개발됐다. 유럽 인종에서 주로 발병하는 낭포성섬유증(CF) 유전자를 초기실험한 결과 종래의 DNA칩에 비해 1천 배나 더 민감했다. CF 유전자를 실리콘 나노 와이어에 붙인 상태에서 환자의 혈액샘플과 반응시킨 결과였다. 질병을 조기 발견하면 그만큼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셈이어서 나노기술을 이용한 칩이나 센서 기술은 더욱 발전할 전망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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