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 갇힌 과천 아파트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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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 아파트 매매시장이 단기 급등에 따른 후유증을 지독하게 앓고 있다.

과천은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집값 상승률(공시가격 기준, 상승률 49.2%)을 기록한 곳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180도 변했다.

일부 아파트는 지난해 가을 최고 호가보다 30%나 낮은 가격에 거래가 됐다.

하락폭이 이 정도면 반발 매수세가 나올만도 한데 아직 그런 조짐이 안 보인다는 게 주변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게 마련인데 과천 아파트 매매시장이 지금 깊은 골짜기 속에 있는 격이라는 설명이다.

과천 아파트 시세 19주 연속 하락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한국부동산정보협회에 따르면 과천 아파트값은 3월 둘째 주 이후 19주 연속 내림세다. 넉 달 동안 ㎡당 아파트값이 평균 1150만원(평당 3800만원)에서 1070만원(평당 3540만원)으로 80만원 가량 내렸다.

시세표상으로는 넉 달 동안 7% 정도 값이 내려 지난해 11월 초 수준(㎡당 1070만원)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최근 넉 달 동안의 하락률은 과천이 전국 1위다.

그러나 실거래가 신고서에 나와있는 매매금액을 보면 하락폭은 이보다 훨씬 깊다. 원문동 주공2단지 59㎡형(18평형)의 경우 지난해 12월 9억4000만원에 실거래 신고됐지만 지난 5월에 신고된 실거래가는 7억9000만원이다. 반년도 안돼 16%나 낮아진 것이다.

중앙동 주공1단지 89㎡형(27평형)은 실거래가가 지난해 11월 11억7000만원에서 최근 8억7000만원으로 3억이나 떨어졌다. 하락률이 무려 26%에 달한다.

집값 급등락에 따른 피해자 속출

▲정부의 재건축 규제 조치 등으로 최근 경기도 과천시 아파트
값이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트값이 급변하자 낭패를 본 경우도 잇따른다. 지난해 가을 원문동 주공2단지 59㎡형을 9억원에 팔기로 하고 매매계약서를 쓴 모씨의 경우 집값이 계속 오를 기미를 보이자 매매예정가의 10%인 9000만원의 위약금을 치르고 매도계약을 취소했다.

당시 과천 주민들이 회원인 모 인터넷 까페에는 이 아파트가 13억원까지 올라갈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최근 같은 면적의 다른 집이 7억8000만원에 팔렸다.

지난해 가을 과천 집값이 무서운 기세로 급등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재건축 기대감이 컸다. 과천은 지난해 8월 23일 과천 주공2단지가 재건축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경기 파주와 서울 은평뉴타운에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다. 서울ㆍ수도권 집값이 전체적으로 들썩이는 가운데 재건축 호재까지 겹쳐 급등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에만 과천 집값이 10.2%나 급등했다.

그러나 올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재건축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키로 한 1ㆍ11부동산 대책이 나오면서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더욱 강화된 대출규제도 매수세를 움츠리게 했다. 지난해 과천 집값 급등의 단초가 됐던 주공 2단지 안전진단 재료가 지난 4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현실화됐는데도 매수세는 붙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손절매(손해보고 파는 것)사례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중앙동 주공1단지 89㎡형을 11억4000만원에 산 모씨는 최근 이 집을 8억원대 후반에 팔았다. 취득ㆍ등록세를 포함해 몇개월 새 3억원 가까이나 손해를 본 것이다.

호가 거품은 계속 빠질 듯

과천 아파트 가격은 지금 2중 구조로 돼있다. 호가 위주로 형성된 시세와 실거래가 사이에 갭이 크다. 최근 7억원대 후반에 실거래가 된 원문동 주공2단지 59㎡형의 경우 한국부동산정보협회 등에 나와있는 시세는 8억원대 중후반이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최근에는 시세보다 가격을 한참 내린 급매물만 거래되는데 급매물 거래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내리면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시세를 조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지난해 호가 위주로 오른 시세는 시간을 두고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말이다.

과천 S공인 관계자는 “과천 아파트 매매의 80% 가량은 과천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며 “대기매수세들은 지난해 아파트값이 호가 위주로 크게 오른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시세가 조금 내려도 섣불리 아파트를 사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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