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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쇼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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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TBC)의 간판 프로그램 중에 ‘쇼쇼쇼’가 있었다. 춤과 노래와 코미디가 결합된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였다. 진행자는 ‘후라이보이’ 곽규석씨. 본래 후라이보이는 공군 출신이었던 곽씨가 ‘나는 아이(fly boy)’라는 뜻에서 지은 예명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 세간에선 속칭 ‘후라이친다’고 하면 곧 ‘거짓말한다’는 뜻으로 통했다. 그래서 후라이보이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란 뜻으로 와전됐다. 그 덕분에 후라이보이가 펼쳐 보였던 쇼쇼쇼는 실제 방송된 내용과는 무관하게 ‘그럴듯하게 포장된 그 뭔가’를 상징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막을 내린 지 수십 년이 지난 쇼쇼쇼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화려하게 리바이벌되고 있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씨는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지만 그를 대신하고도 남을 ‘후라이걸’ 신정아씨가 나타난 것이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씨가 기껏해야 재담으로 사람들을 웃겼던 것과 달리 후라이걸 신정아씨는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를 들이대며 펄펄 ‘날았고(fly)’, 진짜 그 이상으로 후라이를 쳤다. 또 “박사가 대수냐, 미국 박사도 별것 아니야, 고졸이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하며 세상을 비웃듯 쇼쇼쇼를 펼쳤다. 그리고 아직 뭔가 또 보여 줄 요량으로 새로운 쇼쇼쇼에 대한 궁금증을 잔뜩 남겨 놓은 채 뉴욕으로 날아갔다. 이래저래 그녀는 후라이걸이었다.

 신정아의 쇼쇼쇼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번엔 공영임을 자임하는 한국방송공사(KBS) 라디오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의 진행을 7년씩이나 맡아 왔던 영어 강사 이지영씨가 발 빠르게 쇼쇼쇼 2탄을 터뜨렸다. 중학교 3학년 때 영국으로 건너간 뒤 브라이튼대를 졸업하고 언어학 석사 과정도 수료했다던 이지영씨가 실제로는 전남 광양에서 초·중·고교를 마친 뒤 고교 졸업장을 받은 것이 전부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지영씨는 순천대에 들어갔지만 거의 학교를 다니지 않은 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부근 소도시 호브의 어학원에서 1년 남짓 공부하고 브라이튼에 있는 기술전문학교를 1년여 동안 다녔지만 학위는 없었다. 하지만 이지영씨는 연세어학당·이익훈어학원 등에서 인기 강사로 활동했고, 심지어 2004년 한국방송 텔레비전·라디오 부문 최우수 진행자상을 받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통쾌하고 기막힌 쇼쇼쇼 아닌가. “학력이 별거냐 실력 있으면 그만이지” 하는 사람들에겐 내심 ‘통쾌한’ 쇼쇼쇼이고, “그래도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하며 7년씩이나 방송을 할 수 있지” 하는 사람들에겐 ‘기막힌’ 쇼쇼쇼였다.

 이런 쇼쇼쇼가 온통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쇼쇼쇼의 최고 가치는 흥행이다. 학위와 학력은 쇼의 흥행을 위한 네온사인 간판처럼만 여겨진다. 그렇다고 ‘간판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뭐가 진짜 실력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온통 세상은 거대한 쇼가 돼 버렸다. 신문에 기사 나고, 방송에 얼굴 내밀며, 인터넷에 뜨면 그것이 실력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 내걸고 여기저기 얼굴 내밀며 흥행에 성공하면 고름이 굳어 살 되는 식으로 그것이 실력이 되고 명성으로 굳어지는 쇼쇼쇼의 나라. 이것이 오늘 우리의 숨길 수 없는 자화상이다. 쇼쇼쇼의 나라에서 흥행의 원리만이 판치는 한 가짜 박사는 앞으로도 수없이 나올 것이고, 학력 세탁과 위조는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아울러 어떻게 해서든 일단 뜨고 보자는 흥행의 묘한 심리는 제2, 제3의 신정아·이지영씨를 양산할 것이다. 이 천박한 흥행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할 텐데 자칫 대선마저 흥행 원리에 휘말려 더 거대한 쇼쇼쇼가 될까 심히 두려운 마음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