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공백」이 빚은 철도참변/김석기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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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상초유의 인명피해를 낸 부산 열차 전복사고는 문민정부의 개혁외침을 무색케하는 어처구니없는 원시적 재난이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새정부의 개혁선풍 회오리속에서 일어난 이 참사는 아직까지도 우리사회가 타성에 젖어있으며 닥쳐올 재난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행정관청의 책임자들이 초보적인 안전수칙 준수와 감독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흔적이 여러곳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공회사와 건설사는 철도운행의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철로주변 굴착공사 등의 경우 반드시 철도청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더욱이 해당지방철도청은 붕괴위험을 안고 있는 굴착공사 시행사실을 사전에 알았음이 분명한데도 협의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공사구간의 안전진단을 외면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같은 무관심과 무신경이 새시대 행정쇄신 구호를 무색케하는 어처구니없는 원시적인 참사로 연결된 셈이다.
정치와 행정·기업·사회의 각 분야가 차분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맡은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는 진정한 의미의 의식개혁이 체질화되지 않은 탓이다.
과거 국민들을 놀라게 했던 대형사고는 사소한 무관심이 빚어낸 「인재」임이 드러나 경종을 울리곤 했다.
그때마다 행정관청과 기업은 사후약방문식의 각종 대책과 개선책을 제시하곤 했으나 「사후약방문」은 습관처럼 되풀이돼 원시적 재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은 「위로부터의 개혁」 못지않게 「밑으로부터의 개혁」도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의식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정부의 개혁구호는 구호에 그치게 된다.
불행한 사고에서 교훈을 얻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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