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 가면 꼭 있다
록매니어 오상윤씨
지난해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는 비공식 마스코트가 있었다. 한 관객이 사흘 내내 흔들어댄 토끼인형이었다.
긴 막대기에 매달린 토끼인형은 관객들이 많이 몰리는 공연에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록 사운드에 맞춰 긴 귀와 팔다리를 흔들어댔다. 공연장에는 “토끼인형을 따라다니자”는 말마저 돌았다. 후회 없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뜻에서다. 토끼인형으로 지난해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재미를 더한 관객은 록매니어 오상윤씨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록페스티벌 매니어다. 서머소닉 록페스티벌(일본), 글래스턴베리·브이·리즈·B라이브·일렉트릭 피크닉 페스티벌(이상 영국) 등 유수의 페스티벌을 섭렵했다.
그를 마포구 서교동의 한 미용실에서 만났다.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는 손님들의 머리를 다듬을 때도 록음악을 틀어 놓는다. 미용실 한쪽에는 DJ부스 같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압구정동 고급 미용실에서 일할 때 늘어지듯 편한 음악이 성향에 맞지 않아 무척 고생했어요. 그래서 1년 반 전 독립해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록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미용실 한구석에는 토끼인형이 놓여 있다. 올해도 록페스티벌에 데리고 가기 위해 깨끗하게 빨아 놓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말 영국에서 열린 글래스턴베리 록페스티벌에서 유쾌한 사고(?)도 쳤다. 토끼인형이 아닌 태극기를 흔들어댄 것이다. 그가 수많은 인파 속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은 BBC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인파에 밀려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 멀리 일장기가 나부끼는 게 보이더군요. 일장기에 밀릴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동료가 준비해 온 태극기를 6m 봉에 매달아 흔들었습니다. 가슴이 뿌듯했어요.”
그가 생업도 제쳐놓고 록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 TV에서 해외 록페스티벌의 엄청난 군중을 보고, 나도 언젠가 저 군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2004년 일본 서머소닉 페스티벌 때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좋아하는 록가수들의 라이브를 한자리에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게 록페스티벌의 가장 큰 매력이죠.”
자신의 미용실에서 토끼인형을 들고 있는 록 매니어 오상윤씨. 김태민 인턴기자
그가 록페스티벌에 임하는 자세는 어떨까.
“위생에 신경 쓰지 마세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비도 자주 오다 보니 씻는 것이 무척 불편합니다. 깔끔함 따위는 잊어버리고, 록에 몸과 마음을 맡기세요. 고생은 하지만, 갔다 오면 좋아하는 뮤지션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보물처럼 가슴에 자리 잡을 겁니다.”
그는 이번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 케미컬 브러더스와 뮤즈의 공연이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록매니어답게 체력 안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처음부터 너무 달리면 막상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에서 힘이 빠져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날그날 보고 싶은 공연을 미리 파악해두고 체력을 적절하게 안배해야 합니다. 록페스티벌도 일종의 뷔페잖아요.”
정현목 기자, 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