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원들 왜 그리 돈 많나/서민들 “분통”… 의혹 큰 축재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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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입법관련 2억받고 구속된건 순진한 경우”/5·6공시절 재력기준 공천에 부자들 몰려
국회의원,특히 여당의원들은 왜 돈이 많을까. 그 많은 돈과 땅이 다 어디서 났을까. 재산형성 방법이라고는 재형저축밖에 없는줄 알았던 서민들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번 민자당의원 재산공개에서 중하위권에 든 한 민주계 중진의원은 『원외야당생활을 하다 초선의원이 되니 확 달라지고,여당의원이 되니까 또 달라지더라』고 실토했다.
『일단 원내에 들어오면 돈있는 친구나 동창·선배들이 가끔 쥐어주는 용돈의 단위가 십만원대에서 백만원대로 달라집니다. 야당시절에는 중간보스들이 1백만,2백만원씩 도와주기도 하고요. 별 용건이 없어도 기업체를 운영하는 안면있는 인사의 사무실을 찾아가면 자리에서 일어날때 봉투를 내놓게 마련입니다. 우리 여건에서 그 정도의 활동마저 하지 않으면 지역구 사무실의 여직원 봉급조차 대기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정작 야당시절에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경우는 정부나 기업체의 약점을 알아냈을때 그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입막음용 돈」이었습니다.』
이 의원이 3당합당(90년초)으로 여당의원이 되자 다시 변화가 있었다. 『야당시절엔 행여 정보기관에 약점잡힐까봐 무서워 몇몇 얼굴 두꺼운 의원들 말고는 노골적인 수금활동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돈 쓸곳도 여당의원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었지요. 여당은 다릅니다. 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여당 지역구의원의 힘과 역할은 「시장+경찰서장」으로 보면 됩니다. 여기에다 때로는 그 지역의 검찰지청장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당의원은 지구당 부위원장들을 많게는 10여명까지 거느린다. 대개 사업체를 운영하는 지역유지들임은 물론이다. 이들 부위원장의 재정적 도움을 받는 이상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민자당의원은 『동료의원의 일이라 대놓고 말하기 곤란하다』면서 『심한 경우 면장에서 군청의 심부름하는 여직원을 채용하는 일에까지 입김을 작용하는 경우도 보았다』고 말했다. 관리들이 『영감님(의원)께 먼저 여쭤보라』고 인사청탁을 오히려 조장한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지역대로,서울에서는 서울대로 여당의원은 가만히 있어도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생선가게의 고양이」로 변신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부패사슬이 그 정도로 깊기 때문이다. 의원들 사이에는 그래서 89년 9월 농약관리법 개정과 관련해 방제협회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 구속된 박재규 전의원의 사례는 대표적인 「순진한 경우」로 꼽힌다.
13대당시 문공위원이던 한 의원은 『사립학교법 개정(90년 3월) 당시 모 사학재단에서 돈을 싸들고 밤중에 집앞을 지키고 서있는 바람에 이틀이나 여관신세를 진 일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그 돈이 몇억대였다고 들었는데,내가 안 받은것은 솔직히 돈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였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이번 재산공개 과정에서 문제된 의원들은 이 정도를 넘어선 사례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재산이 많다 해서 문제삼는 시각은 옳지 않다. 선대로부터 받은 유산이 워낙 많거나 사업을 정직하고 열심히 해 벌었다면 나무랄 이유가 없다. 이런 유형이 아닌 ▲이권개입 ▲인사개입 ▲투기 등으로 돈을 번 흔적이 있다면 의원자격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나쁜 유형은 입법심의 과정에서 거액의 금품을 받아내는 경우다.
문제된 의원들은 대부분 공무원·정치인·군장성 등 정상적으로 활동해서는 재산가가 될 수 없는 공인출신들이다. 정치인출신은 평의원때부터,비정치인출신은 의원이 되기전 공직생활을 할때부터 직위를 이용한 축재를 일삼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단순히 주택만 놓고 보아도 치안본부장출신(이영창의원),충북도지사출신(강우혁의원),전직대통령의 인척이자 상공부장관출신(금진호의원)이 모두 3채씩을 소유하고 있으니 그 경위에 의혹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정통성이 허약했던 역대정권이 공천 기준으로 재력을 중시한 것이 「돈많은 여당의원」을 양산한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5공때는 전국구의원 선정에서조차 암암리에 돈이 작용했다. 돈으로 공천받아 의원이 된 만큼 당선후 본전을 챙기는 것은 물론 다음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뒷돈을 쌓아두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부 야당의원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정부를 상대로 추상같은 질문을 퍼붓다가 잠깐의 정회후에는 순한 양같이 변하는 야당의원들은 대개 「사연」이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여기에 선거비용은 갈수록 인플레현상이 빚어져 지난 14대총선때는 최소한 30억원은 써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지난 총선당시 민자당소속으로 대구에서 당선한 한 의원(현재는 탈당)의 측근은 『50억원을 예상하고 선거전에 돌입했는데,주위에서 알아서 도와주는 바람에 후보의 개인돈은 한푼도 축나지 않았다』고 말한적이 있다.
이같은 현상은 결국 유권자를 상대로 한 넓은 의미의 매표가 아닐 수 없다. 손해보는 것도 유권자뿐이다. 정치는 현실이고 현실이 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는 돈」이라거나 「돈이 곧 정치」라는 가치전도된 등식이 성립될 수는 없다.<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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