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北核 해결 확률 높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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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확률이 높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 이후에 예상되는 도전과 기회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해 나가는 일이다.

북핵 문제는 10년 전 해결됐던 기록이 있다. 그 후에 제네바 합의가 북한의 우라늄 때문에 정지된 상태에 있지만 10년 전의 경험을 기억한다면 북핵 문제를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정의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무기를 포기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다.

*** 핵포기 강력한 동기부여 필요

미국은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식 문제해결 방식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리비아의 카다피는 미국식 문제해결 방식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물론 북한은 아직 그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놓여 있는 상황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가오는 11월 미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가 재선되면 북한의 입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만의 하나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북한 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있어서는 공화당 정부와 차이가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협상 스타일에서 민주당은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적극 추진하는(pro-active) 반면 공화당은 북한의 선택을 요구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차이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이전에 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선거 이후에 북한은 참으로 어려운 곤경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북한은 자신의 존재양식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한은 아직도 '주체'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대외 의존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북한 통치자들도 모를 리 없다. 그리고 '주체'를 부르짖는 한 북한은 자신의 실제 존재양식과 당위성 사이의 모순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이른바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로부터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2002년 7월 1일 시작된 소위 '경제 관리 개선 조치'는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낳았는데 이 조치에서 북한은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 식량.생필품 배급제 축소 등을 발표하고 있지만 북한 경제의 기본구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구조의 개선 없이 관리만 개선한다는 것은 오히려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체'라는 슬로건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세계경제의 틀 안으로 통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통치자 김정일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물론 북한의 체제 문제다.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주체'를 포기했을 때 북한의 체제는 대전환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김정일은 경제의 구조적 개선을 위한 결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줄 안다. 북한의 결단은 2004년을 넘길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 北경제 구조 개선도 뒤따라야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북핵 문제의 올해 내 해결을 예상할 수 있다면 북한의 체제 전환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 경제가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순간 북한은 체제전환의 과정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로 가는 역사의 대행진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반도의 분단이 극복된다면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에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동북아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분단을 전제로 세력균형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은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을 유발할 것이 확실하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환경을 배경으로 한.중, 한.미, 한.일 관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과거 분단시대의 대외 의존적 자세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하는 흥분과 불안 속에서 새로운 동북아 세력균형을 구축해 나가는 비전과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통일시대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찍 올 수 있다.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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