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스타일 달라졌다/청와대 비서들도 놀라는 “파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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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회의는 토론부터… 육참총장 바꾸곤 “놀랐지”/비서실 “자유롭지만 일정 빈틈없어 더 피곤”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이지만 종전의 「어전회의」와는 판이해요.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는 별로 없고 항상 토론부터 합니다. 회의나 오찬·만찬 참석자들에겐 대통령이 직접 좌석을 돌면서 악수를 건네는데 기분이 괜찮더라고요.』
16일 부처업무보고차 청와대에 다녀온 총무처 관리들이 털어놓는 인상기다.
어떤 공사석이든 대통령 곁에 장승처럼 서있는 경호원들도 없어졌더라고 말했다.
과거 청와대를 방문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즘 청와대를 와보곤 눈에 띄는 변화와 부드러움을 실감한다. 북한의 핵문제와 사정 때문에 나라안팎의 겨울기운에 싸여있는 것과는 딴판이다. 이른바 군사문화 타도를 앞장서 부르짖어온 김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그의 경력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이어서 이곳저곳에서 춘향이 묻은 일화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은 우선 대통령이라고 해서 언행을 좀더 엄숙하게 한다는 등의 변화가 별로 없다.
지난 10일 공사졸업식장에서 김 대통령은 젊은 생도들과 악수하면서 꼭 한사람 한사람마다 투박하게 격려의 말을 했다. 대통령의 덕담을 면전에서 들은 몇몇 생도들은 웃기까지 해 이를 지켜본 군출신 인사들은 『문민이 다르다』고 한마디씩. 부인 손명순여사는 더 「파격적」이었다. 두손으로 생도의 손을 꼭 잡으면서 머리까지 숙였다. 한 생도는 황송해서 같이 머리를 숙이려다 얼른 정신차리고 거수경례를 붙였다.
대통령의 눌변성 어투도 화제거리다.
김 대통령은 16일 공군기지에서 스텔스전폭기에 오르면서 『거참 레이다에도 안잡히는 비행기라니…』라며 감탄했다. 롯데월드에 처음 들른 섬소년 같았다. 청와대주변 안가에 대해서는 『그런 호화시설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어 새로 보고 느끼는 일들에 대해 그는 늘 신기함과 호기심을 눌변으로 피력한다.
김 대통령은 취임날 대통령집무실의 인터폰 사용법을 몰랐다. 그래서 집무실문까지 걸어와 밖에 대고 『기수(김기수수행실장)야,물좀 갖다주라』고 했다. 여전히 장학로제1부속실장에게는 『장군,이것좀 해줘』식이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런 일화를 전했다. 『국방장관·육참총장·기무사령관이 하루 아침에 바뀔때 세상이 깜작 놀랐잖아요. 다음날인가 수석비서관회의를 하는데 김 대통령이 살짝 웃으면서 「어때 다들 놀랐지」라고 하더라구요.』
대통령집무실인 본관 주변 경호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김 대통령은 민자당대표시설 노태우대통령을 만나면서 유일하게 「방문패찰」을 달지 않겠다고 버텨 관철한바 있다. 이때문인지 요즘 청와대에선 손님은 패찰을 달지않고 비서관·경호원등만 비표를 차고 다닌다. 지위고하를 떠나 일단 청와대를 방문한 사람에게는 손님대접을 하는 것이다.
민자당고위당직자를 수행하고 있는 한 보좌관의 얘기. 『노 대통령 때만 해도 우리 수행비서들은 본관앞에선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어요. 화장실에 갈때도 경호원이 일일이 따라 붙었죠. 이 일은 지금 대통령 수행실장인 김기수씨도 당했던 일이에요. 그러나 지금은 수행원들도 본관에 들어가 대기실에서 커피도 마시고 식사때가 되면 밥도 얻어 먹지요…. 본관갈때 이제는 자존심이 상하질 않아요.』
행사때마다 큰 접견실의 구석구석을 지키던 경호원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김 수행실장 혼자만 왔다갔다 할 뿐이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스타일은 자유스러워도 집무시간이 길고 일정이 빽빽해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더 많아졌다고 측근들은 설명하고 있다.
김 대통령은 관저로 퇴근할때 각종 보고서 등 서류뭉치를 직접 들고 간다. 또 신문·TV뉴스도 꼼꼼히 챙겨 담당비서관인 박영환씨는 오후 10시전후에 집에서 대통령의 전화를 받는 일이 잦다.
김 대통령이 오찬·만찬에 설렁탕·떡국·칼국수를 대접하는 바람에 대접견실에 깍두기·김치냄새가 밸까봐 비서관들은 걱정이다. 한 비서관은 『냄새제거책을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개인적으로는 청와대생활에 답답함도 느끼는 것 같다. 김 대통령은 『임기내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측근들에게 선언해 외출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일요일 낮 가족예배가 끝나면 손자를 데리고 경내 수영장에 가는게 고작 생활의 여유에 속한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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