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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사모펀드 기업사냥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호 20면

잭 웰치(72·오른쪽)는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를 20년간 맡았다. 웰치의 아내인 수지 웰치(48·왼쪽)는 세계적 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지냈다.

A: 사모펀드를 둘러싼 요즘 논란은 1980년대 후반 요란했던 차입매수(LBO·돈 빌려 기업 인수하기) 열풍과 닮은꼴입니다. 그때 차입매수 열풍은 거품 꺼지듯이 끝났지만, 이 경험에서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자본주의는 차입매수 열풍과 냉각 같은 부침을 겪지만 무너지지 않고 작동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이제 질문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인수합병 열기가 가라앉으면 사람들은 사모펀드가 남긴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기업을 더 효율적으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저희가 기업을 사랑하고 80년대 차입매수 10여 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에 비춰 그리 놀랄 만한 결론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희 부부가 과거 경험에만 의지해 요즘 일을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사모펀드 붐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지극히 최근 발생한 현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6년 동안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모펀드 가운데 하나인 클레이턴·듀블리어·라이스에서 일했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당신이 심심치 않게 들었을 사모펀드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알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사모펀드가 기여한 몫은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사모펀드가 특별히 비판받아야 하는가? 일반 기업도 똑같이 빌린 돈으로 기업을 사들여 되팔아 치워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라고 되묻기도 합니다.

물론 몇몇 일반 기업이 돈을 빌려 기업을 사들인 뒤 되팔고 있습니다. 전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많은 일반 기업이 사모펀드처럼 하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영진의 욕망, 타성에 젖어 변화를 거부하는 기업 조직, 거액을 빌리는 데 따른 신용등급 하락 우려, 기업매수가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 등입니다.
또 일반 기업의 소유자와 경영자는 따로 노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 이익만을 챙기려 합니다. 이사들은 두 달에 한 번꼴로 회사에 들러 대충 살펴보고 말지요. 기업의 발전보다 현상 유지에 더 열심입니다.

반면 사모펀드가 사들인 기업의 이사회는 다릅니다. 사모펀드가 선임한 이사들은 “최근 나를 귀찮게 할 만한 사건이 발행한 건 아니겠죠?”라는 식의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장할 방법을 같이 찾아봅시다” 또는 “분기 실적은 신경 쓰지 마세요. 과감하게 장기 투자하세요”라고 주문합니다.

물론 사들인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사모펀드 경영진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습니다.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스티브 슈워츠먼이 본보기입니다. 블랙스톤의 최근 기업공개(IPO)에서 그는 거액을 챙겼습니다.

또 사모펀드는 엄청난 부를 연기금에 돌려주기도 합니다. 사모펀드가 끌어들인 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공무원이나 교직원, 일반 기업의 연기금입니다. 이 돈으로 기업을 사들여 효율성·경쟁력을 높인 뒤 되팔아 연기금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모펀드는 뮤추얼펀드보다 미국 사회의 노후 안전망을 더 탄탄하게 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모펀드 부작용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 의회가 추진 중인 사모펀드에 대한 소득세 부과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연의 일치지만 그런 논란은 80년대 일었던 갑론을박과 같습니다. 의회는 기업연금이 차입 매수해 번 돈에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법을 상정해 놓고 있습니다. 법안이 상·하원을 통과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규제 움직임에도 사모펀드는 기업을 사들여 되파는 작업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을 싼 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한 사모펀드 기업사냥은 계속된다는 얘기지요. 구체적으로 이자, 세금, 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EBITDA)을 기준으로 주당 인수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해도, 혹은 인수자금을 조달할 때 부담해야 하는 이자비용이 커지고 조건이 까다로워진다고 해도 사모펀드가 싼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팔 수 있는 기업이 존재하는 한 기업사냥은 계속됩니다.

반대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팔 기업이 사라지면 사모펀드의 기업사냥은 침체됩니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이 파산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백화점 지주회사인 페더레이티드 디파트먼트 스토어스(FDS)가 사모펀드의 비호를 받은 기업 사냥꾼 로버트 캠푸의 앨리드 스토어에 의해 적대적으로 인수합병된 뒤 90년 파산했습니다. FDS는 캠푸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면서 빌려 쓴 부채를 떠안았다가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갚지 못했습니다.

요즘 기업의 인수가격이 EB ITDA를 기준으로 9배 이하인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요즘 사모펀드 기업인수를 우려의 눈길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모펀드 열풍이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불길한 예언이지만 불가피해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전 세계 자금시장이 빡빡해진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여파로 사모펀드의 기업사냥 열기가 식을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판 페더레이티드 디파트먼트 스토어스 파산이 줄지어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이 13조 달러에 이른 미국 경제가 더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변한 데는 사모펀드도 기여했습니다. 사모펀드 열풍 뒤에 찾아올 위기 정도는 견뎌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모펀드의 기업사냥 열풍에 이은 위기가 진정되면 투자자들은 사모펀드 열풍이 다시 불기를 원할 것입니다.

뛰어난 액션 영화를 본 관객이 속편을 기대하는 것처럼.  

사모펀드란

15세기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을 지원하기 위해 부호들의 자금을 끌어 모은 것이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의 기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모펀드라는 이름은 자금조달 방식에서 비롯됐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뮤추얼 펀드처럼 대중의 돈을 유치(공모)하지 않고 소수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사모펀드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사모펀드가 이름과 달리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더 많은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투자도 대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모펀드는 요즘 광산·유전 개발에도 뛰어들고 있다. 일반 기업의 설비투자에도 참여한다.

전 세계 사모펀드는 지난해 말 현재 700여 개가 설정돼 있고 자본금만도 4500억 달러 선에 이른다. 사모펀드는 보통 상장기업의 주식을 대거 사들여(바이아웃·Buy-Out) 상장을 폐지한다. 이어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2∼5년 동안 그 기업을 구조조정한 뒤 재상장하는 방식으로 되팔아 2∼6배 정도의 수익을 챙긴다.

특히 사모펀드는 투자은행을 중간에 내세워 채권을 대량으로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을 사들인다. 부채는 대부분 피인수 기업에 전가된다. 피인수 기업은 이를 갚느라 상당 기간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모펀드가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약화시킨다는 비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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