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주자들 대통합 외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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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찾는 두 곳이 있다. 호남 지역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이다. 두 곳을 찾는 데에는 지지율의 높고 낮음이나 소속 정당에 차이가 없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1일 전남 장성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 민심대장정의 출발지였던 그곳에서 '2차 민심대장정'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손 전 지사는 전남 화순, 전북 김제를 찾은 데 이어 15~16일 광주와 목포에 들를 계획이다. 민심대장정의 많은 시간을 호남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저는 '친노'(親 노무현)이자 '친김'(親 김대중)"이라고 말한 것도 2일 광주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충청 출신인 그에게 DJ와 호남은 범여권의 대선 승리 방정식 중 하나인 '호남+충청 연합'을 일구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지난달 말 광주.목포 등을 도는 '호남 민심투어'를 했다. 김혁규 의원 역시 12일부터 이틀간 광주를 찾아 자신의 지지모임인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첫 창립대회에 참석한다.

통합민주당 주자들도 일제히 '호남선'을 타고 있다.

이인제 의원이 5일 출마 선언 직후 광주 5.18 묘역을 참배했고 영남 출신인 추미애 전 의원은 18일부터 열흘가량 광주와 전남북을 순회하면서 '호남 며느리론'을 전파할 작정이다.

DJ의 동교동 자택에는 '2차 대선 주자 러시'가 일고 있다. 범여권의 주요 인사들은 5월에도 일제히 DJ를 면담했었다.

9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DJ와 만나 "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정통성을 잇는 사람"이라며 "대통합을 이뤄내고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통합에 기여하는 이가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한 DJ에게 자신이 적임자라고 강조한 것이다.

12일엔 천정배 의원이 동교동을 찾았다. DJ는 "시간이 없다. 사명감을 갖고 빨리 뭉쳐야 한다"며 대통합을 거듭 주문했다. DJ는 또 "남북 화해.협력과 햇볕정책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고 북.미 협상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한 사람들이 정치 리더십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인제 의원은 출마 선언 전날 동교동을 방문했다.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10일 DJ로부터 "친노 후보가 대통합에 동참한 것은 잘한 일"이란 덕담을 들었다.

주자들이 이처럼 공을 들이는 것은 호남이 범여권의 가장 강력하고 전통적인 지지 기반이기 때문이다. 한 자릿수 지지율을 보이는 주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아지는 상황에서 초반에 기세를 올리려면 호남의 민심을 얻어야 한다. 호남을 찾을 때마다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 드려도 은혜를 다 못 갚는다"고 웅변하는 DJ는 호남 기반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로 주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범여권 주자에 대한 지지세는 호남에서부터 수도권으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각 주자들이 지지율 10% 고지를 돌파하려면 호남에서의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의원을 돕고 있는 김정현 전 민주당 부대변인도 "범여권의 동력은 호남에서 나온다"며 "범여권이 대통합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도 호남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경제회생을 바라는 호남 사람들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쏠리는 경향을 보였으나 최근 한나라당 '빅2' 간 검증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호남 민심의 흐름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범여권 주자들이 이런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통합민주당 조순형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DJ가 최근 '대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지도자는 다음 총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전직 대통령으로 해선 안 될 지나친 정치 개입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선 주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수시로 찾아가 면담하고 무슨 지침을 받아오는데, 그런 것은 삼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성탁 기자, 이신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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