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해외공장 없이는 생존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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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위원장을 비롯한 노동조합 간부와 회사 간부 24명으로 구성된 ‘LG전자 노경협의회’는 이달 1~6일 유럽 현지의 생산·판매현장을 돌아봤다. 세계의 각종 브랜드가 들어와 있는 글로벌 경쟁의 한복판을 노조도 직접 체험해 본 것이다.

 ◆"노조도 글로벌 시각 가져야”=LG전자 노조가 해외 소비자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노조는 “우수한 노동력과 협력업체들이 있는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되는데 왜 해외로 공장을 옮겨야 하느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직접 소비자를 만나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치열한 판매현장에서 마주친 유럽의 소비자들은 까다로웠다. 유럽 토종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다. LG전자의 인지도는 일본 브랜드에 미치지 못했다. 장 위원장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면 생산·디자인·물류 등 모든 면에서 노력이 필요하다”며 “관세(14%) 장벽을 극복하고 일주일 안에 원하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려면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과 같이 출장을 갔던 노조 간부들도 “유럽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조가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각을 가져서는 기업도 노조도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현지 공장에 기술력 전파하겠다”=영국에 이어 폴란드 디지털 TV 공장을 방문한 노조 간부들은 한눈에 기술 격차를 느꼈다. 올해 초 설립된 폴란드 공장의 생산성은 한국의 60~70% 수준. 시간당 생산대수나 불량률에서 한국 작업자들과 수준 차이가 컸다. 노조는 회사 측에 “기술을 가르쳐줄 국내 현장 전문가를 파견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해외 공장은 노조 입장에서는 일종의 경쟁상대다. 하지만 박준수 LG전자 노조 창원1지부장은 “관세장벽 때문에 불가피하게 현지 생산을 해야 한다면 기술력을 한국의 100%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조가 돕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유럽에 다녀온 뒤 장 위원장은 회사 측에 “해외 바이어가 노사분규로 인해 제품 조달이 안될까 우려하거든 날 불러달라”고 말했다. 본인이 가서 ‘분규는 없다’는 점을 설득하고 수주를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연례행사처럼 파업하는 노조도 있지만 우린 그러면 망합니다. 우리가 회사를 지키지 않으면 고용안정도 없기 때문이죠.” 장 위원장은 “글로벌 경영에 협조하는 것도 조합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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