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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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관청에선 높은 사람의 얼굴사진을 「존영」이라 부른다. 5공집권과 함께 전두환대통령의 존영이 중앙 관청에서부터 시·읍·면까지 하달되었다. 새 존영을 본 몇몇 사람이 넥타이의 꽃무늬가 당시 유행하던 외제품임을 명백히 드러낸다는 지적을 했다. 곧 하달됐던 사진은 회수되고 새 넥타이로 바뀐 존영이 지급되었다.
오랜 권위주의 시절을 살아온 우리로서는 동회나 파출소 정면에 태극기와 나란히 걸려있던 대통령의 존영을 보면서 적잖이 거부감을 느꼈던게 사실이다. 이런 거부감이 차기대통령의 측근에까지 작용했던지 존영 부착을 이번 정부부터는 폐지하자는 건의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방침은 부착장소를 줄여 그대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따지고 본다면 대통령의 존영이라해서 일괄 폐지하자는 것도 지나치게 즉흥적인 발상이다. 통치자의 우상화라면 나쁜 측면이겠지만 국기와 국가원수의 사진이 국가의 통합적 의미와 결속을 다지는 측면도 있다. 영국과 일본의 여왕과 국왕이 주는 상징적 통합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 이민족이 섞여 살고 국토가 넓은데다 연방제를 운영하는 미국은 법령을 만들어서까지 대통령의 사진을 중앙부서 과장급 사무실에까지 비치한다. 나름대로 국가통합의 상징적 의미를 거기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문민시대의 시작이니 무턱대고 존영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기보다는 우상화에 가까운 남용을 막자는 주장이 바람직할 것 같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해외공관에 대통령 존영은 비치되는게 마땅할 것 같고,명령과 지휘체계가 존중돼야 군부대에는 통수권자의 존영이 걸려 있는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동회나 파출소에까지 전국 곳곳에 대통령사진이 남용되는 것은 삼가는게 좋다.
지금껏 정부가 실시해온 존영 관례는 이를 규정하는 엄한 법령이나 규칙이 있어 준수된 것은 아니다. 모두가 알아서 기었기 때문에 걸지 않아도 좋을 장소에까지 버젓이 걸려있어 거부감까지 유발했던 것이다.
너무 남용돼 눈에 거슬리던 것을 좋은 의미의 본래기능으로 회복하는 것도 개혁의 한 방법이다. 눈에 거슬린다고 모조리 없애는 것만이 개혁은 아닐 것이다.<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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