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66. 제자 김주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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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골프선수 중 가장 장타를 달렸던 김주형 프로. [중앙포토]

 내 제자 가운데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사람이 있다.

 전 국가대표 김주형이다. 키 187㎝, 발 크기가 300㎜인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의 우즈’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장타력를 갖고 있었다. 그의 비거리는 요즘 한국에서 가장 공을 멀리 보내는 배상문보다 20야드는 더 나갔다. 나는 주형이보다 더 멀리 공을 날리는 한국 골퍼를 보지 못했다. 내가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곱씹어야 했던 키 작은 한국선수의 설움을 깨끗이 씻어줄 대어였다.

 아나운서 김동건씨가 그의 아버지다. 골프 애호가인 김씨와 나는 1966년 처음 만나 친구가 됐다. 김씨는 내게 아들의 장래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김주형은 아버지의 권유로 초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클럽을 잡았다. 내가 잠시 가르치다가 당시 한국 최고의 장타자였던 후배 김덕주 프로가 무려 11년 간 지도했다. 주형의 선배 골퍼들은 “세계 무대에 나가 한 번 일을 낼 선수”라며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고려대에 진학하면서 모든 일이 틀어졌다.

 그는 고교 3학년 때 국내에서 골프 장갑을 생산하던 한 사업가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연간 5만 달러와 미국 생활비 등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형에게 김덕주 프로와 함께 미국으로 가도록 권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동건 아나운서는 이 제안을 뿌리치고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대학에서 교양을 쌓은 뒤 세계 무대를 노려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는 대학 졸업 뒤였다. 주형은 일본 행을 택했다. 한 재일동포가 그를 돕기로 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김동건씨에게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그 배경을 물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 성공하려면 점보 오자키, 구라야마, 아오키 등 유명 프로에게 보내야 일이 풀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남자 골프계는 여자에 비해 텃세가 심하다. 주형을 보살펴 준 분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추어라면 몰라도 프로를 제대로 키워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는 내 걱정대로였다. 주형은 일본에서 실력을 기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골프 실력을 키우는 데도 적절한 때가 있다. 미셸 위가 요즘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도 때를 놓친 탓이다.

 주형은 3년 전 귀국해 음식점을 경영한다고 들었다. 내게 전화해 “한번 오시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습니다”라고도 했다.

 그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정말 속이 답답하다. 만일 그때 내가 고집을 좀더 부려 주형이를 미국에 보냈더라면 한국 골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얼마 전 김동건씨가 김덕주 프로에게 “그 때 당신 말을 안듣고 아이를 미국에 못 보내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것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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