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신폭 좁아 보조작업만/활동마친 대통령직인수위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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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문성 떨어져 정부업무 파악도 벅차/효율적 운영위해 법적근거 마련 시급
지난 11일 김영삼 차기대통령에게 부정방지위 설치법안과 경제활성화 대책을 보고한 것으로 사실상 소임을 다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 정원식)는 향후 정권이양과 관련해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인수위는 지난 88년 1월18일 구성된 13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당시 위원장 이춘구)의 선례를 본떠 구성됐으나 그 성격과 기능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평화적 정권이양을 처음으로 경험한 13대때는 준비위가 순수 동류집단내부의 교체작업을 맡았으나 이번의 인수위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집단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이질적인 세력간의 권력이동을 중계하는 역할을 했다. 인수위가 공공요금 인상 등 궂은 일은 현정부에 떠맡긴 대신 경부고속전철 차종선정권 등 중요 결정사안은 차기정부 몫으로 챙긴 것도 이질감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또 설치령에 따르면 인수위는 준비위와 같은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명시돼 있으나 실제 한 일은 서로 달라 하나의 관례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여야간 정권교체에도 대비해 권력이양작업이 순조롭고도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인수위는 우선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았다. 인수위는 설치령에서 ▲정부조직·기능 및 예산파악 ▲인적·물적자원에 대한 관리계획 수립 ▲국가주요정책의 분석 및 수립 ▲새정부 정책기조 설정 준비 ▲정부기능 수행과 관련된 주요 민간단체와의 업무협조 ▲대통령취임식 준비 등의 임무를 부여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한 일은 정부업무파악과 취임식 준비를 마치고 몇가지 정책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인수위가 이같은 소사만을 다룬 것은 전적으로 김 차기대통령의 의향에 따른 것이다. 그는 특유의 스타일대로 새정부 요직인선 등 정권의 골간을 세우는 작업은 철저히 혼자 챙기는 한편 인수위에는 새정부 출범준비와 관련한 보조적인 실무작업을 맡겼다.
그는 또 애초에 인수위의 권한과 한계를 분명히 하지 않은채 먼저 위원부터 인선한뒤 그때그때 임무를 맡겨 인수위는 주먹구구식 운영을 면치 못했다. 더욱이 김 차기대통령은 인수위원을 지역안배차원에서 골랐기 대문에 전반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져 인수위가 정부업무조차 제대로 파악하는데도 벅찼다는 평가다. 인수위의 인적구성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현정부는 중요 국가기밀사항을 인계하지 않고 업무를 거의 국회 상임위원회 수준에 맞춰 보고했다. 따라서 새정부가 출범하는 즉시 아무런 공백과 차질없이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적지않이 염려하는 얘기도 나오는 형편이다.
김 차기대통령이 인수위가 이처럼 운영되도록 내버려둔 것은 인수위에 힘을 줄경우 각종 인사·이권청탁 등의 잡음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13대 준비위는 인수위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당시 노태우대통령 당선자는 김 차기대통령과는 달리 매일 취임준비위원들과 원탁회의를 갖고 정권이양작업의 핵심인 조각문제를 협의했다. 때문에 준비위는 전두환 전대통령측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인수위가 어떻든 사상 두번째로 권력인수작업을 마침에 따라 앞으로는 보다 발전적이고 짜임새 있는 정권인계·인수가 이뤄지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이번 임시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의 이해찬의원이 따지고 현승종총리가 개인적으로 동감한 인수위의 법적 근거 미흡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현재 인수위는 정부자문기관 등의 설치를 규정한 정부조직법 4조에 의거하는 것으로 유권해석됐으나 인수위가 현정부의 관장을 받는 기구가 아니고 오히려 정부측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기관인 만큼 법적근거가 희박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같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수기구의 법제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3대 준비위와 이번 인수위에 모두 참여했던 최병렬의원은 『여야간 정권교체 등에도 상관없이 권력의 원만한 인계·인수가 이뤄지려면 인수위같은 기구는 법에 의해 제도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정권인수작업을 맡는 기구가 해야할 일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면서 『미국처럼 인수기관이 신정부와 관계된 인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야 정부가 바뀌는 즉시 매끄러운 국정이 펼쳐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경우 새정부가 인사해야 할 자리는 기껏해야 장·차관,국영기업체이사장·사장·감사 등 2백20여개밖에 되지않아 3천여 자리를 바꿔야할 미국처럼 번잡스럽지 않게 인수작업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국가의 주요업무를 확실하고도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시 미국처럼 각료 내정자가 직접 인수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같은 방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현재 각료를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 헌법을 바꿔야 한다.
이밖에 촌음이라도 국정공백없이 완벽한 정권이양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현재 민법의 기산일 규정을 원용하고 있는 정권교체 시각을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 즉 지금은 정권교체가 「새 대통령 취임일 자정부터」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기는 하나 이 시각부터 취임식이 열리는 시각까지는 국가원수가 실제로 청와대에 없는 상태가 되므로 미국처럼 통치권 인계·인수시점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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