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천국, 바르셀로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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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25면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로 유명한 도시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그곳에 가지만, 내 경우엔 거의 먹기 위한 장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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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동안 머물며 내가 가장 감탄하고 사랑한 공간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나 ‘구엘 공원’이 아니라 아무도 그 건축가 이름을 주목하지 않는 보케리아 시장(La Boqueria)이었다. 뉴욕 타임스의 한 요리 칼럼니스트는 이 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바르셀로나가 미식가를 위해 얼마나 멋진 선택인지 보여주는 완벽한 증거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푸드 마켓일 뿐만 아니라 과일과 야채를 가장 근사하게 쌓아올릴 줄 아는 사람들의 활기찬 전시장 같다. 하다못해 보다 생동감 있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신경 써서 입은 흔적이 역력한 생선장수 아주머니들(사진)의 발랄한 옷차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흥이 난다.
게다가 시장 안에는 싸고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작은 바가 몇 군데나 있어서 결코 빵이나 달걀 따위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싶지 않은 허기진 아침이면 나는 늘 보케리아로 달려갔다. 무서운 독재자 프랑코가 남긴 유산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것이 런치타임을 강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오직 점심 식사만을 위한 양질의 세트 메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레스토랑이 꽤 많다.

별다른 정보 없이 짧은 일정으로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주로 관광객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라 람블라스 거리의 레스토랑에서 스페인의 국민 메뉴라고 할 수 있는 파엘라(고기·해산물·채소를 섞어 죽처럼 질게 볶은 밥 요리)를 먹는다. 하지만 미식가라면 라 람블라스 거리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류 레스토랑을 피해야 한다. 30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는 무려 1만 개의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중 아홉 개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슐랭 스타’를 받았다. 그 가운데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는 ‘엘 불리(El Bulli)’는 전문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1위를 차지한 곳으로서, 예약하고 1년을 기다려야 그 유명한 테이팅 메뉴(5시간 동안 30여 가지 코스의 분자 요리가 끝도 없이 나온다)를 맛볼 수 있다.

나 역시 결국 ‘엘 불리’엔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누구나 나처럼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레스토랑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힌트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바처럼 보이는 식당에 주목하라는 것. 그리고 후각의 본능에 따라 움직일 것. 손가락으로 싱싱해 보이는 생선이나 고기를 가리키고 바에 앉으면 요리사가 당신이 보는 앞에서 가장 단순한 요리법으로 식재료 고유의 맛과 향기를 살린 환상적인 요리를 해서 내놓는다. 그리고 식전에는 꼭 스페인을 대표하는 발포성 와인 카바(Cava)를 한 잔 마실 것. 카바의 맛을 알게 되면 유명한 샴페인 ‘모엣 샹동’이 그 품질에 비해 얼마나 터무니없이 비싼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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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허니’ 김경씨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인터뷰어로 개성 넘치는 책 『뷰티풀 몬스터』『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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