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도 프랑스 "여권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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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파리 루브르박물관 유리벽에 갇혀 있는 모나리자가 해외여행을 원한다면 모나리자는 우선 프랑스 문화부에 여권부터 신청해야 한다. 지난 1일부터 프랑스정부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예술품에 대한 여권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외국에 나가려면 여권이 있어야 하듯이 예술품의 국외 이전에도 여권을 요구하는 이 제도는 국가가 보호해야할 중요한 예술품이나 문화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프랑스정부는 밝히고있다. 즉 국외 전시나 대여·기증·판매 등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예술품의 반출입 상황을 국가가 엄격히 관리·통제함으로써 중요 문화재의 불법해외유출을 방지한다는 이야기다. 이 제도 시행에 따라 프랑스의 모든 예술품과 문화재는 크게 세가지로 분류되게 됐다.
첫째는 여권이 필요없는 경우. 예술적 또는 상업적 가치를 불문하고 창작된지 50년 미만인 예술품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미성년자의 해외여행에 사실상 여권이 필요없는거나 마찬가지다.
둘째는 여권발급 규제 대상. 사람으로 치면 출국금지 대상인 셈인데 국가적으로 너무 귀중한 예술품이나 문화재이기 때문에 항상 국내에 두고 관리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모나리자가 여권을 신청한다해도 안나올 가능성이 큰 것은 바로 이 두번째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속하는 예술품이나 문화재에 대한 최종적인 여권발급 여부는 관계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 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된다.
이 두가지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가 여권발급 대상으로 국외반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여권이 필요한 경우다. 이 경우라도 감정가격이 일정액 이하인 예술품은 여권발급 면제대상이 돼 자유롭게 해외로 가져갈 수 있다. 예컨대 감정가 1백만 프랑(약1억 5천만원)미만의 그림은 그린지 50년이 넘었더라도 여권없이 외국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50년 이상된 원고나 필사본, 1백년 이상 된 고문서, 인류학적 가치가있는 기념조형물 등은 감정가에 관계없이 여권을 받아야만 국외반출이 가능하다.
예술품에 발급되는 여권의 유효기간은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인 5년. 프랑스 외무부가 아닌 문화부가 여권을 발급한다는게 다를 뿐이다.
프랑스정부가 이 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은 지난1월1일부터 EC(유럽공동체)시장단일화로 물품 이동에 있어 EC회원국간에 국경이 없어진데 따른 것이다. 규정상으로는 단일시장 출범에도 불구, 중요문화재나 예술품은 자유이동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하지만 국경세관검사가 사라진 이상 자동차 트렁크 같은데 적당히 숨져 갖고 나가면 적발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 현재 EC집행위원회는 불법 반출된 중요 예술품에 대해서는 원 소유국이 강제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 중에 있다. 프랑스의 예술품 여권제도는 이와 관련한 별도의 자체 보완책인 셈이다.
프랑스의 경우 중요 예술품의 국외반출을 위해서는 종전에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제도는 기존의 방식을 좀더 복잡하게 체계화한데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서류행정 좋아하는 프랑스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관료주의 발상이라는 게 프랑스문화계 일각의 반응이기도 하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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