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자의 맛있는골프] 회장님 뜻대로 하소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해가 구름을 다 먹어치워 구름 한점 없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단체팀 1조를 배정받았다. 1조에는 어느 회사의 연세가 많이 드신 회장님이 계신 조였다.
 
모두들 회장님과 같은 조에서 치는게 불편한 것 같았다. 회장님이 나오기 전까지 가방을 몇번이나 앞 뒤로 바꾸었는지 모른다.-_-
 
드디어 회장님 등장. 70이 넘으신 백발 회장님. 회장님은 내기를 하자며 일방적으로 돈을 걷었다. 부하 직원들은 회장님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듯'한 분위기였다. 모두들 군소리없이 재빨리 돈을 냈다.
 
회장님만 빼고 3분은 모두 장타자였다. 회장님은 늘 170~180야드의 드라이버 비거리를 냈기에 '고음불가'가 아닌 '파온 불가'였다.-_-
 
파4홀이 400야드 정도 되는데 어떻게 투온이 된단 말인가.
 
회장님은 본인의 드라이버 비거리를 홀마다 물으셨다. "이번엔 몇이나 나왔어? 170?, 190?, 200야드?" 사실 400야드 짜리 파4홀에서 드라이버 치고 남은 거리가 200야드 이상 남으면 나 역시 대답하기 부끄럽다. "아휴~~갈수록 드라이버 거리가 주는구만….-_-" 회장님의 자조섞인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쇼트게임은 오랜 구력 덕분인지 아주 훌륭했다. 스킨스를 했는데 회장님의 귀여운 투정(?)으로 매홀 회장님이 돈을 따갔다. 물론 동반자 분들이 일부로 져 주는 분위기였지만. ㅋㅋㅋ.
 
일례로 동반자 A님이 270야드 정도의 드라이버 샷을 날렸고 세컨샷이 잘 안맞아 그린 근처에 떨어졌었다. 어프로치 샷이 핀 옆에 바짝 붙어 기브를 받아서 모두들 "나이스 파!"라고 외쳤다. 그런데 우리의 회장님께서는 보기를 했다며 소리치셨다.
 
부하직원 A는 "회장님~~저~~보기가 아니구요~~파~~~한거 같은데, 아~닌~가~요?"라며 조심스럽게 모기만한 목소리로 들릴랑 말랑하게 이야기 했다. 그러자 회장님께서는 "아니! 지금 내가 늙고 눈도 어두워 졌다고 나를 속여?"하면서 "아까 분명히 세컨드 샷이 왼쪽 언덕에 올라가는걸 내가 봤어"라고 말씀하셨다.
 
다들 할말은 많은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답답해서 내가 나섰다. "회장님~~왼쪽 언덕에서 공과 심하게 싸우신 분은 A님이 아니고 C님입니다. 그쵸 C고객님?" 모두들 말없이 끄덕 끄덕하며 인정하는데 회장님은 끝까지 우기셨다.

누가 회장님의 뜻을 꺾으랴. 결국 스코어 카드엔 멀쩡하게 파를 하구도 보기로 적어야 하는 불행이 왔다. 결국 총 85개 정도를 친 A님의 스코어 카드에는 회장님께서 불러주는 스코어 89가 적혀 있었다.
 
스코어를 줄여 준적은 많은데 이렇게 어느 누군가의 협박에 의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려서 적어본건 처음이다.ㅋㅋㅋ. A님도 속상하지만 회장님의 뜻이니 어쩔수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회장님~~오늘 날이 무척 더운데 볼 치느라 힘드셨죠? 이런 날씨는 저희들도 견디기 힘든 날씨네요~~"(동반자의 애교섞인 목소리). 그러자 회장님은 "아냐, 무더운 날씨는 이거보다 더 해도 견딜수 있는데. 너희들의 장타를 지켜봐야 한다는건 더 힘들어. 아주 못견디겠다!!-_-"
 
'아, 옛날이여~.' 회장님께서는 예전에 한때 장타자로 살았는데 오늘 동반자들의 샷을 보면서 그 한때나마 잘 쳤던 드라이버에 대한 추억이 떠 올라 견딜 수 없었던 날이었나보다.

[일간스포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