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할 곳 찾지 못해 기업 쌓아둔 돈 364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매출 순위 1000대 국내 기업들이 회사 안에 쌓아둔 돈(잉여금)이 2006년 말 현재 36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5년 전인 2001년(179조원)의 두 배다. 국내 기업들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어 기업의 성장 속도가 글로벌 기업에 뒤쳐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4일 매출 1000대 기업(금융회사 제외)의 잉여금 현황 등을 담은 ‘기업 유보율과 시사점’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1000대 기업의 총잉여금은 2000년 말 176조원에서 2005년 말 322조원, 지난해 말에는 364조원으로 늘었다.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유보율도 2000년 312%에서 지난해에는 616%로 증가했다.

 유보율은 대기업일수록 높았다. 매출 100대 기업은 2006년 말 유보율이 722%, 101∼500위 기업은 473%, 501∼1000위 기업은 327%였다. 유보율 증가 속도도 대기업이 더 빨랐다. 2002년 대비 2006년의 유보율이 100대 기업은 3.1배, 101~500대 기업은 1.8배, 501~1000대 기업은 1.7배였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상대적으로 덜 하고 돈을 더 많이 쌓아온 것이다. 대한상의는 보고서에서 “투자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표 기업의 성장 속도가 글로벌 기업들에 뒤처지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4일 발표한 ‘한국 기업 경쟁력의 재점검’이라는 보고서에서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현대중공업 4개사와 미국 인텔, 일본 도요타·신일본제철, 독일 지멘스, 핀란드 노키아 등 5개사의 경영실적을 비교했다. 2005~2006년 국내 기업의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8.4%로 글로벌 기업(9.4%)보다 1.0%포인트 낮았다. 2002~2003년에는 우리 기업이 13.8%로 오히려 글로벌 기업(8.6%)보다 성장률이 5.2%포인트 높았었다. 2003년께부터 투자를 꺼리는 풍조가 나타나면서 그 결과로 성장이 둔화됐다는 분석이다. 매출 1000대 기업의 잉여금은 2003년부터 급속히 늘었다.

 대한상의는 투자 부진의 원인이 수익성·안정성에 치중한 보수적 경영과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비하기 위해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투자활성화를 위해 ^출자총액제한 완화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부활 등을 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권혁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