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용" 고3 교실은 기말고사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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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을 놓고 어른들이 계속 싸움만 하면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3일 오전 서울 S고에서 기말고사를 치른 뒤 하교하는 고 3학생들은 시험에 대해 극도로 민감해져 있었다. 이번 전국 고3 학생들의 기말고사는 정부와 대학 간 치열한 '내신 갈등' 속에서 치러졌다. 양모(18)군은 "내신 비중이 50%가 될지, 어떻게 될지 솔직히 관심이 없다"며 "어찌됐든 다 잘 봐야 한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4일 기말고사를 시작하는 경기도 평촌고는 시험 일주일 전부터 오후 10시까지 남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 반에 20~30명은 된다. 지난 학기만 해도 시험 직전에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3~5명에 불과했다.

숙명여고 이화규(49) 교사는 "이번 기말고사에서는 정답에 대한 학생들의 이의 제기도 많아지고 학생들이 내신에 민감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대학이 2008학년도 대입에서 내신을 어떻게 반영할지를 놓고 갈등을 벌인 지 21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내신 반영과 관련해 아무런 결론이 내려지지 못하면서 고3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3년 내내 내신전쟁"=올 고 3학생들은 2005년 '내신 반대 촛불 시위'를 벌였던 세대다.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되는데 따른 고통을 1학년 때부터 겪어왔다.

한 고3 네티즌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1989년생인 고3들 가지고 장난 치지 말아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사이버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우리는 그저 89년도에 태어난 죄밖에 없다"며 "4개월 남은 시점에서 더이상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K고 김모(18)군은 고 2까지 예체능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과목에서 1등급을 받았다. 그런데도 김군은 "(이번 시험에서)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기말 고사를 잘못 보면 서울대 수시모집에 지원할 수 있는 티켓(3장 중 1장)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 이모(43)씨는 "3년 내내 마음 졸이며 버텼다"며 "그런데도 정부나 대학 모두 이런 사정은 알지 못한 채 싸움만 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학교도 올해 입시의 정확한 방향을 몰라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서울 H고 진학부장인 임모 교사는 "내신 50%가 적용되면 고3 교실에 핵폭탄이 터지는 셈인데 그렇게 되겠느냐"며 "교사들이나 학생들 모두 일단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번 6월 모의수능에서는 수능 고득점자가 실제 수능 고등급자는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등급에 대한 불만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D외고의 한 교사는 "수능 4개 영역에서 원점수를 기준으로 500점 만점에 460점 받은 학생은 전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으나 480점 받은 학생은 일부 과목에서 2등급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학원만 살판나"=1일 서울 강남의 한 학교 주변 길거리 가로수에는 기말고사 문제지를 가져오면 장당 1만원에 사겠다는 광고가 나붙었다.

학교 인근 내신 대비 학원들이 경쟁적으로 문제지를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기출 문제를 확보한 학원들은 과거 기출 문제와 비교하는 등 문제 분석에 들어간다. 또 'OO고 반' 'XX고 반' 등 학교별 내신 대비반도 운영 중이다.

A학원 원장은 "수능이나 논술보다 시험 범위가 정해져 있는 내신 대비가 훨씬 용이하다"며 "학교 교사들의 출제 경향도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대학 간의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그 틈을 비집고 학원들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이용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 '내신 50% 반영' 등의 내용이 담긴 광고 전단지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학부모 남모(45)씨는 "내신도 종전보다 더욱 중요해지고, 수능도 잘 봐야 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더 힘겨워졌다"고 말했다.

강홍준.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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