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생산 늘려 보호주의 극복(EC단일시장에 가다:6·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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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일본은 어떻게 대비하나/작년 1월 현재 7백21개사 진출/유럽인 입맛맞는 상품개발 주력
유럽공동체(EC)통합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다. EC지역외 국가에 대한 배타성과 시장참여 기회 확대란 두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두성격중 어느 면이 더 강하게 나타날까.
EC측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서명한 이상 배타적인 블록화는 있을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EC통합이 「역내」와 「역외」의 구별을 명확히 하고 있는한 경쟁력이 강한 역외국가에 대해 배타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전기·기계 등 분야에서 유럽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훨씬 강하다. EC는 미·일과 이같은 분야에서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난관을 무릅쓰고 통합했다. 그런데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EC는 배타적 보호주의 정책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이 인구 3억4천3백만명,국민총생산 5조9천9백75억달러의 거대한 단일시장 탄생을 탐탁지 않게 보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때문이다.
물론 EC통합으로 일본은 상당한 덕도 볼 수 있다. EC통합으로 규격과 안전기준의 통일,각국의 인·허가제 폐지,역내 관세폐지,국경철폐로 EC기업과의 공정간 분업가능,개별국가 차원의 대일차별조치나 보호조치폐지 등이 이뤄져 일본상품의 수출이 확대 될 수 있다. 일본에서 만든 상품들도 EC회원국마다의 규제가 아니라 EC전체에 대한 대책만 세우면 되므로 시장을 쉽게 뚫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EC가 여유를 갖고 있을때의 얘기다. 사정이 급하게 되면 쿼타제나 원산지 규정강화,현지 생산품이라 하더라도 현지부품 조달비율 상향조정 등의 방법을 쓸 우려가 있다.
일본은 EC통합이 가져올 이같은 배타적·보호주의적 조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지화밖에 없다고 보고 일찍부터 EC에 대한 투자 등 현지화로 대비해왔다. 특히 지난 5년간 실시된 EC의 일본기업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는 일본기업의 유럽진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무역진흥회(JETRO)에 따르면 유럽 19개국에 공장 혹은 현지법인을 가진 일본기업수는 92년 1월 현재 7백21개사에 이르고 있다. 91년 진출기업은 69건으로 88년이후 매년 1백건이상 진출하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둔화됐다. 이는 일본 기업의 EC진출 의욕이 저하됐기 때문이 아니라 통합완료기간이 92년으로 다가옴에 따라 그동안 진출할만한 기업은 다 들어갔다는 얘기다.
대장성통계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유럽투자도 89년 9백16건 1백48억8백만달러,90년 9백56건 1백42억9천4백만달러에서 91년에는 8백3건 93억7천1백만달러로 대폭 줄어들었다. 지난 51년부터 91년까지의 누계는 8천2백28건에 6백86억3천6백만달러나 된다. 일본 기업들은 이제 EC에 새로 진출하기보다 그동안 진출한 기업들의 내실화를 다지고 있는 단계다. 일본의 자동차회사중 가장 먼저 EC에 진출한 닛산(일산)은 지난해 8월부터 생산하는 차의 경우 현지에서 부품의 83%를 조달하고 있다. EC가 요구하는 50%를 훨씬 넘는다. EC가 아무리 트집을 잡으려 해도 영국에서 만드는 닛산 자동차가 유럽시장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는 일본산이 아니라 영국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현지생산 및 부품조달 비율상향 조정에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의 현지화도 서두르고 있다. 도시바(동지)측은 『아무리 현지부품 조달비율을 높여도 유럽에서 팔리는 상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러려면 소비지와 가까운 곳에서 연구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즉 유럽에서 일본기업의 경쟁은 생산거점수를 놓고 싸우는 시대에서 현지연구개발 확대경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JETRO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유럽지역 연구개발 및 디자인거점은 91년 1년동안 65개소가 증가했다.
일본은 이처럼 오래전부터 EC통합에 대비해 왔기 때문에 속으로 EC통합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 지난해 1월 조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한 것처럼 『얼마를 무조건 사라』 『무역적자를 언제까지 무조건 해소하라』는 식의 관리무역형태의 보호주의를 쓸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자동차·반도체·컴퓨터 등은 이미 일본의 상대가 안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중 일본의 대 EC경상수지는 작년동기보다 81.0%(2백13억4천만달러),무역수지는 33.6%(2백18억달러) 각각 증가했다. 같은 기간중 일본의 대미경상수지 흑자가 0.3%감소하고 대아시아 흑자는 14.8% 늘어난데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EC의 보호주의를 경계,기술지원·현지생산·현지법인경영의 현지인화 등으로 공생을 모색하고 있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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