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안에 못 끝내면 ‘말짱 헛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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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최 대리는 최근 사장님의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난 3페이지에서 벤치마킹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보지도 않아.” 아니 이게 무슨 말? 그는 지금까지 첫째 쪽은 제목. 둘째 쪽은 목차. 셋째 쪽에는 그동안의 사업 개괄을 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장님, 왜 하필이면 벤치마킹입니까?” 최 대리가 사장님께 물었더니 “우리 기업은 시장에서 일등이 아니지 않습니까. 일등을 하려면 일등이 뭐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자세가 없으면 되겠습니까?”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 대리는 부랴부랴 내일 사장님 앞에서 진행할 프레젠테이션 자료의 순서를 바꿨다. 자료의 셋째 쪽에는 당연히 ‘경쟁업체 분석과 벤치마킹’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최 대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배운 것이 있다. 그야말로 시작이 반이라는 것이다. 초반에 분위기를 리드하지 못하면 청중은 산만해진다. 자연스레 유머로 청중을 집중시키고 시작하면 좋은데 최 대리는 유머엔 도통 자신이 없다.

남은 방법은 하나. 3쪽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3P’에서 청중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그 프레젠테이션은 해봐야 실패할 확률이 높다. 단번에 사로잡을 방법은 없을까. 달인의 몇 가지 비결을 소개해본다.

요약본은 반드시 만들어라

지금은 프레젠테이션의 달인으로 불리는 A컨설팅사의 K이사. 그러나 그도 헤매던 때가 있었다. 몇 년 전 부장으로 승진한 후 개별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를 처음 맡았을 때다. 그런데 첫 고객(Client)이 하필이면 까다롭기로 소문난 S전자였다.

당시 K부장은 팀원들과 며칠간 밤을 새우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했다. 분량만도 100 쪽이 넘는 노작이었다. 예상 질문도 30개 이상 준비해 든든했다. 사전에 컴퓨터와 빔 프로젝트도 점검하고 자리 배치도 확인했다. 이제 잘 마무리만 하면 된다.

마침내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되자 클라이언트의 대표인 S전자 사업부장(전무)이 들어섰다. 그런데 대뜸 “아! 미안한데 내가 지금 서울로 올라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5분 안에 간략하게 해 주게!”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머릿속에 채워 둔 것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5분 안에 끝내야 될지…. K부장은 얼어붙었고 결국 대답을 제대로 못하며 머뭇거리자 사업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선,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측근을 대동하고 나가버렸다.

K부장은 이날 이후로 항상 요약본을 만드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간혹 5분 정도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가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결국 청중은 결론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유럽에 비해 다소 엄격한 경향이 있어 컨셉트나 철학보다는 그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결론부터 PPT를 시작하는 경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실무진이 아닌 경영층에 프레젠테이션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요약본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요약본의 배치는 제목 바로 다음이나 목차 다음에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셋째 쪽은 서론이 아닌 결론이 놓일 자리가 된다.

집중도 높여주는 동영상 활용

눈길을 사로잡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이닉스에서는 직원 1만9000여 명이 모여 임원들의 강의를 듣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임원이 직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다. 동영상 칭찬 캠페인이라든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전달하다 보면 몇 천 명이 됐든 집중도가 높아진다.

하이닉스에는 다양한 직군, 다양한 연령대의 직원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임원진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동영상을 제작해 함께 시청한다고 한다. 조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프레젠테이션 시간 동안 하나가 되는 장점이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신제품 출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잘 쓰는 방법으로 플래시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시선을 붙드는 예가 있다. 신제품이 론칭되기 전에 마켓 트렌드, 소비자 리서치 등 첫 시작 페이지에 들어갈 만한 단계들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신제품을 한 번에 보여주는 것이다.

정곡 찌르는 한마디가 중요

호주관광청 서울지사의 최승원 지사장은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는 한마디로 승부를 걸었다. 그 말은 ‘Be careful’. 다른 말이나 그림 없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이 말만 화면에 띄웠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은 일들이 브랜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그녀의 클라이언트는 TV광고가 한 브랜드의 9할은 책임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작은 판촉물이나 사소한 이벤트도 모든 게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물론 적임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결국 그 한마디는 그녀가 지금의 위치에 올라오는 데 도움이 됐다.

숫자로도 충분히 말이 된다

한 소형가전 업체 P사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이었다. 너도나도 다양한 그래픽, 컬러풀한 화면으로 상사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가장 반향을 일으킨 것은 무심할 정도로 심플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그는 제목도 목차도 없이 대뜸 엑셀화면을 띄웠다. 그러고 나서 발표자는 엑셀 화면만 보면서 각 숫자의 의미를 읽어내고 트렌드를 설명하고, 5년 후 10년 후의 변화상까지 발표했다.

광고 전문가라면 모두 자신을 똑똑하다고들 생각하는데 아이디어만이 아니라 숫자 곧 사실 정보를 전달하니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매출액 증감뿐 아니라 재무제표도 활용해본다면 경영진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달인의 준비법

◇ 요약본은 이렇게! 청중이 30초 이상 집중하는 것은 어렵다.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자. 만약 ‘1000만 달러 수출이 목표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면 아예 ‘10,000,000$’만 쓰는 것이 집중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 사진이나 동영상 자료는 이렇게! 사진이나 동영상 메시지를 단 몇 마디로 뒷받침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사진자료는 www.gettyimageskorea.com, www.dpchallenge.com, www.flickr.com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마음을 사로잡는 한마디는 이렇게! 영화ㆍ드라마ㆍ시 ㆍ소설 같은 문학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자.

◇ 숫자 정보는 이렇게! 숫자로 말을 하는데 만약 수치가 틀리다면 말짱 도루묵. 자료의 출처를 밝히는 것은 기본이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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