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논술한다] 동북아 군비경쟁 불가피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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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력이 필요하다.’ 이 아이러니는 오늘날 동북아 정세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우리가 이지스 함을 건조하고 중국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며 일본이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한 배경에는 바로 ‘평화’와 ‘전쟁 억제’라는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군비 증강이 ‘평화’와 ‘전쟁 억제’에 기여할 수 있을까.

 ①군비증강으로 자국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은 전쟁을 억제한다. 동북아 국가들이 자국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상황에서 상대적 열세에 있는 우리가 군비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힘의 균형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②그것은 곧 강한 군사력을 지닌 주변국 사이에서 국가 안보는 물론 국제적 발언권 조차 갖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 실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강한 군사력으로 주변 약소국을 침략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동북아 평화가 영원할 수 없다면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다른 국가만큼의 군사력을 보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이런 주장에 대해 군비경쟁이 단순한 자원의 비효율과 낭비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③이는 지나치게 이상적 생각에 치우친 결과라고 본다. ④우리의 군비 경쟁 참여는 ‘평화’와 ‘국가안보’란 중요 목적 달성을 위한 대가이며 국가 경제 활성화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절대 자원의 낭비라고 볼 수 없다.

 예컨대 이지스 함 건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 비용은 이지스 함 건조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군수산업 활성화는 더 나은 기술 개발로 이어질 것이며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얻은 신기술과 노하우는 다른 제품 생산과 개발에 반영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중요한 국가 목적 달성과 경제적 부수 효과를 볼 때 군비 경쟁 참여는 결코 자원의 비효율적 이용이나 낭비가 아니다.

 (다) 따라서 우리는 군비 경쟁에 참여해 ‘평화’와 ‘전쟁 억제’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다만 군비증강으로 우려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특히 군사력 증강 목표에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힘을 길러 자국의 생존과 평화를 위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평화가 아닌 자국만을 위한 이기심에서 출발한 군비 경쟁이라면 결국 동북아 전체에 침략과 전쟁이라는 비극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다.  

이준용(성남 이우고 3)

총평과 첨삭

 이번 논제는 동북아 군비 경쟁에 대한 입장과 국가안보, 평화 정착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준용 학생은 이러한 논제를 잘 파악했으며, 글 전체에서 뚜렷한 논리로 일관성 있게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담지 못한 게 아쉽다. (나)부분에서 (다)에 있는 결론을 마무리 짓고 (다)부분은 국가 안보와 평화 정착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썼다면 더 좋았겠다. 한 가지 더 지적하면, 주장을 추측성 어미를 사용해 펼치고 있다. ③의 문장에서 “결과라고 본다” 대신 “결과다”라고 쓰자. 좀 더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이 힘을 얻도록 하는 게 좋다. 또 의존명사 사용이 잦은데 이는 문장의 맛을 떨어뜨린다. 되도록 ‘~것’,’ ~수’ 같은 의존명사는 피하자. ①의 경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시키면 전쟁도 억제된다’로 고쳤으면 한다. 그리고 이 문장은 근거가 약하다. 군비 증강이 오히려 상대국에 대한 자극제가 돼 전쟁을 유발할 수 있다. ②도 마찬가지다. 북유럽 국가는 군사력 없이도 충분히 국제적 발언권을 행사한다. ④의 군비 경쟁이 국가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가 공감을 얻기 어렵다. 오히려 미국처럼 군수산업이 비대해져 다른 산업 발전을 막고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다)부분이 주장한 바와 달리, 평화와 전쟁 억제는 동북아 국가들 간 상시 협의체를 구성해 국가 안보와 평화 정착을 꾀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도 달성될 수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반박이 어려운 논거로 자신의 주장을 펴야 설득력이 강해진다. 전반적으로 이준용 학생의 글은 주장을 시원하게 펼친 부분이 장점이다. 하지만 의존명사의 지나친 사용으로 글의 힘이 좀 떨어진다. 앞으로 이 부분을 좀 더 보완해야 하겠다.

또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일반화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논거를 갖다 붙인 대목도 있다. 좋은 논술의 3대 요소를 논제의 정확한 파악과 주장의 정립, 설득력 있는 논거의 배치라고 볼 때, 마지막 논거의 배치에 앞으로 더욱 관심을 쏟으면 일취월장이 기대된다.  

정승민 (중앙일보NIE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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