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공포… 생필품난/이라크 생활고 “신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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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스등값 30배 올라… 주유소 장사진/식품배급 급감… 공장가동 거의 중단
전쟁에 대한 공포,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턱없이 모자라는 생필품.
미·영·프랑스 연합군의 이라크 남부지역에 대한 공습으로 이라크 국민들은 또다시 극심한 공포와 혼란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습사실이 발표된 14일 수도 바그다드는 시민들의 일상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신문을 사보거나 라디오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라크 국민들의 전쟁공포는 사담 후세인대통령이 14일 오전 TV에 나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에 대한 보복을 추구하는 연설을 행한 이후 급속도로 확산·고조되고 있다.
후세인대통령의 TV연설이 있자마자 바그다드시내는 물론 교외에 있는 주유소까지 기름을 사려는 자동차행렬도 일대 혼란을 빚었다. 또 식료품상점을 비롯,시장역시 전쟁에 대비해 비상 식량·땔감을 사두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2년전 생생하게 경험한 걸프전의 망령이 또다시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 국민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생필품을 사고 싶어도 턱없어 모자라는데다 거의 모든 물품들의 가격이 공습 발표이후 폭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스등은 불과 며칠전에 비해 30배 이상 뛰어오른 9백디나르(약 45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월평균 소득 3백디나르(약 15달러)의 3배나 되는 가격이다.
이라크정부는 걸프전 이후 기본식료품에 대해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상황이 더욱 악화돼 배급량을 필요한 양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실정.
이 때문에 빵·밀가루·쌀·기름 등 생필품은 걸프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2년전에 비해 1천배 이상 뛰어올랐으며,이번 연합군 공습으로 인해 가격이 또다시 뛰어오르고 있다.
밀가루·쌀·설탕·차·육류 등의 가격은 최근 1∼2주 사이 30∼50% 가량 인상됐고 야채·과일 등은 2∼3배나 폭등했다. 특히 식용유는 구하기조차 힘들어 3배이상 오른 ℓ당 50디나르에 거래되고 있다.
수입의류는 상점 진열대에서 사라진지 오래됐으며 국산의류도 가격이 2배 이상 뛰어올랐다.
환율은 공식적으로 1달러에 0.3디나르지만 암시장에선 달러당 35∼40디나르로 거래되고 있다.
특히 이라크정부가 최근 국경수비를 강화하고 1백개 사치품에 대해 금수조치를 내린 것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라크측이 극심한 생필품 부족 현상을 겪으면서도 이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이라크가 그동안 비축해둔 여유자금마저 바닥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30개월에 걸친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봉쇄조치로 극심한 부품·원자재 부족 현상을 야기해 공장들은 거의 가동을 중단하고 있으며,요르단 등 인접국가로부터 들여오던 밀반입품마저 완전히 끊기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공급되고 있는 생필품은 절대 필요량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서방외교관들은 파악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파탄 일보직전에 처한 경제위기에 따른 국내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기 위한 후세인의 정치적 의도라는 분석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연합군의 이라크공습은 가뜩이나 어려운 이라크 경제에 결정타를 가할 것이 분명하며 엄청난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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