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욕망과 질투의 모래성-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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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14면

‘미필적 고의’란 자신이 한 일에 부수적으로 어떤 범죄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용인하는 태도를 말한다. 슈테판 크로머의 영화 ‘Summer 2004’의 한국어 제목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작품 속의 결정적인 사건들과 연관된 심리상태를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 준다. ‘여름휴가’가 환기하는 발랄하고 평온한 분위기와 ‘미필적 고의’라는 다소 음험한 단어의 결합이 영화 속 평화로운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전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바닷가 휴양지에 동거 중인 커플 미리엄과 앙드레, 아들 닐스와 그의 여자친구 리비아가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리엄은 12살짜리 리비아가 15살인 아들에 비해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 틴에이저 커플은 요트를 타러 나갔다가 아들만 먼저 귀가하고, 리비아는 나중에 빌이라는 청년과 함께 돌아온다. 미성년자인 리비아를 빌로부터 지켜야 한다며 보호자를 자처하던 미리엄 자신이 빌에게 매료되면서 다섯 명을 둘러싼 애정의 관계도는 기묘하게 돌변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사운드 트랙을 일절 사용하지 않은 이 작품은 평범해 보이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이중적인 심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극적 긴장감을 형성해 나간다. 감독은 미리엄의 성적 욕망이 변화하면서 그녀의 태도가 얼마나 모순되게 변화하는지를 그리며, 욕망이 투영된 시선이 어떻게 진실을 가리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물살에 흔들리는 요트 위의 위태로운 자리 바꾸기처럼, 미리엄과 리비아는 빌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지만 의외의 사고로 상황은 갑작스럽게 전환된다. 미리엄이 무의식 속에서 기원했던 일들이 의도하지 않은 사고를 통해 성취되지만, 타인의 불행을 기반으로 한 목적의 달성은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반전처럼 마련된 에필로그를 통해 이 작품은 정형화된 스릴러와 결별하고 관객에게 해결되지 않은 숙제를 남긴다. 글 김지미(영화평론가)

★★☆ 감독 슈테판 크로머 주연 마티나 게덱ㆍ로버트 젤리거ㆍ스베아 로드 러닝타임 97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김지미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국문학을 전공한 뒤 문학과 접목한 영화 읽기와 쓰기를 꿈꾸는 영화평론가입니다.

★표는 필자가 매긴 영화에 대한 평점으로 ★ 5개가 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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