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진흙탕 의총'…'공천 음모론' 싸고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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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의원 총회장으로 들어선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곧바로 단상 옆 자리로 향했다. 으레 해오던 통로쪽 의원들과의 악수는 생략했다. 의원들도 일어서 대표를 맞거나 박수를 보내지 않았다.

의원들의 눈빛은 싸늘했고 의총장엔 분노가 서렸다. 崔대표를 뒤따른 이재오 사무총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오른쪽 안면근육경련 증세가 있는 李총장의 얼굴은 평소보다 심하게 떨렸다.

이날 의총에서는 당무 감사 결과 보고서의 언론 유출과 '5, 6공 출신 공천 배제'발언 등과 관련, 李총장에 대한 비난이 폭발했다. 불똥은 崔대표에게도 튀어 지도부 사퇴 요구도 나왔다. 의원들 간의 반목은 가족사까지 거론되는 험악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첫 발언에 나선 권철현 의원은 "당무 감사 결과에서 조작된 흔적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당내 모세력의 제거와 신비주류, 영남 대거 물갈이 의도가 깔려 있는 것 같다"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순봉 의원은 "당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쇄신해야 한다"며 "崔대표가 이 문제를 해결한 뒤 물러나고 이재오.김문수 의원이 총장과 공천심사위원장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서명운동을 벌이고 공천신청도 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종웅 의원은 "한나라당에 하나회가 있다"며 李총장의 퇴진을 요구했고 정문화 의원은 "현재 비대위를 해체하고 당에 오래 근무하고 당 전체를 대표하는 중진의원들이 새로운 비대위를 만들어 당을 끌고 나가야 한다"며 지도부 쇄신을 촉구했다.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찬우 의원까지 나서 "죽은 사람에게 칼로 난도질을 해도 유분수"라며 "다시 출마해 지역구민의 심판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울분을 토했다.

의원들의 이 같은 공격에 이재오 총장은 "당무 감사는 총장 임명 이전에 이뤄졌고 나는 등급을 분류하라고 한 게 전부"라고 반박하며 "내 거취는 내가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갈등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자 최병렬 대표는 "총선을 코앞에 둔 입장에서 죄송하고 진상을 조사 중이다"며 의원들을 달랬지만 대부분의 의원은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날 의총 이후 서청원 전 대표와 하순봉.신경식 의원 등 비주류 측 중진들은 비상대책위 해체와 이재오 총장.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작업에 착수, 이날에만 의원 7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한편 이날 의총에서 정형근 의원이 "나를 인권탄압 인사라고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한 소장파 의원의 선친이 축재한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해당 소장파 의원은 "아들의 부덕으로 선친께 불이익을 끼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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