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57. 수제자 구옥희<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전성기 시절의 구옥희 프로.

나는 50년 넘게 골프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지도했다. 원 포인트 레슨을 포함하면 1000명은 넘을 것이다. 내가 골프를 가르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끼는 수제자는 구옥희 프로이다.

 구옥희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에서 20승,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투어에서 23승, 그리고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1승을 올렸으니 한국 최고의 여자 프로골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못했다. 구 선수는 경기도 고양 삼송리 근처에 살았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캐디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1976년 쯤 그녀가 남서울컨트리클럽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골프를 배우고 싶습니다.” 처음엔 키도 작고 해서 “이렇게 체격이 작은 애가 골프를 잘 할 수 있을까”하고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날 찾아왔으니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 “골프로 성공하려면 보통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보다 두세 배 노력해야 한다. 내가 하자는 대로 100% 따라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는 쇠파이프 훈련이었다. 남자도 휘두르기 힘든 무거운 쇠파이프를 하루 50~60번씩 휘두르도록 했다. 팔 근육을 키우기 위한 훈련이었다. 둘째는 자전거를 타고하루 3~4km를 달리라고 했다.

 그녀는 지독했다. 쇠파이프 휘두르기를 하루 100번도 넘게 했다. 자전거 타기는 물론이고 매일5km를 뛰었다.

 구옥희가 남서울컨트리클럽연습생이 돼 공을 어느 정도 치게 됐을 때 나는 그와 김덕주 프로를 데리고 많은 연습라운드를 돌았다.

 나는 구옥희에게 “네가 유명선수가 되려면 나한테 9홀에 2,3점을 받고 이겨야 한다. 그러면일본에서도 통할 거다”라고 조언했다.

 1~2년 뒤 그녀의 실력은 급성장했다. 때로는 화이트 티에서 이븐파를 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습량이 엄청났다. 남자 프로도 못 따라 갈 정도의 맹훈련을 했다. 나의 젊은 시절 연습량을 웃돌았다.

 KPGA는 78년부터 여자 프로를 모집했다. 그때 구옥희가 가입했고, 한명현ㆍ강춘자 등이 모였다. 하지만 10명이 채 안 됐다.

이게 KLPGA의 출발이기도 하다. 이듬해부터 KPGA는 남자대회와 여자 대회를 함께 열었고,구옥희는 그해 쾌남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국내 무대에선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그와 맞설 선수 가 없었다.

한장상 KPGA 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