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중앙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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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완판본 춘향전을 따라
광한루 들어서면
열 여섯 입술을 앙다물고
엉겅퀴가 피어 있다.
낮에도 가시가 돋쳐 서는
시퍼런 꿈을 쏟고 있다.
알몸뚱이 새벽마다
남은 어둠 긁어내며
한여름 들판에다
댕기채 풀던 생애
핏방울 목젖에 채우고
고슴도치 새끼를 뱄다.
남녘에 혼자 살았다는
이름 없는 춘향이가
바람만 불고 가면
여기 저기 왜 그렇게 피어나는지
빈 하늘 멱살을 잡고
사랑은 말갈기 귀를 세운다.
가슴 속 옥비녀 뽑아
가리마를 타는 세월
허기전 황토마루
혓바늘만 돋는 길에
읽다 만 외판 본 춘향전이
숲으로 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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