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 단 한번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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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임진각의 새해는 올해도 언제나처럼 실향민들의 가슴저미는 독백속에 밝아왔다.
두고온 북의 가족을 향해 제배를 올리는 주름진 두손과 얼굴들.
『더 늙어 죽기전 단 한번만이라도…』실향민의 눈길엔 갈수록 더한 비원이 가득했으나 강 건너 북녘땅은 떠나온 40년세월내내 그랬듯 적막속에 묻혀 있다.
『내 나이 칠십… 올해엔 가볼 수 있갔소…』
2일 오후 아들(50)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은채 망배단주위를 서성이던 백승려할아버지(평북출신·서울 녹번동)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한발짝이라도 더 다가가려고 철책을 붙잡고 통곡하는 고향잃은 아픔들은 연휴내내 이어졌다.
보름동안 민통선 경비근무를 하며 장례를 마친 실향민 가족들이 차디찬 임진강에 뼛가루를 뿌리고 가는 모습을 10여차례나 봤다는 한 병사는 『고향과 가족의 품이 얼마나 그리운건지 알게 됐다』며 숙연해 했다.
3일 연휴기간중 수만의 인파가 다녀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도 온종일 북녘을 바라보며 애태우는 노부부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가까운 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려는듯 땅거미가 지도록 추위에 웅크리며 헤매는 모습들.
『오늘같은 날은 밤새 눈물을 흘리며 고향얘기를 하시지요. 해가 갈수록 고향생각이 더 사무치시는가 봐요.』
평북 신의주가 고향인 아버지(71)를 모시고 온 황승민씨(36·회사원)는 외로움을 달래드리려고 아들 3형제내외가 모두 한동네서 모시고 살고 있지만 망향의 시름을 씻어드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모두가 선물과 정을 안고 고향을 찾는 명절,수구초심의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줄 「통일의 그날」은 정녕 언제일까.<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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