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회귀10년] 입법위원 직선제 갈등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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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은 중국으로 주권이 넘어간 지 10년 되는 현재 영국보다는 중국에 대한 호감이 더 높다. 경제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정치 분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적 자유에 관한 중국의 모호한 태도 때문이다.

 영국이 통치하던 1990년대 초반에 홍콩인들은 민주의식에 눈을 떴다. 영국 정부가 입법위원(의원)을 직접 뽑는 부분적인 직선제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제 손으로 행정 수반을 직접 뽑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도 젖었다.

 직선제 논쟁은 91년 입법회 60석 가운데 18석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정치 개혁을 단행한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입법회 60석 가운데 30석은 지역 직선으로, 30석은 직능대표를 통한 간선제로 뽑고 있다. 행정 수반인 행정장관은 친중국계를 주축으로 구성된 800명 규모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접 선거로 선출한다.

 직선제 도입에 대한 갈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04년 7월 1일에는 정치 체제 개혁 문제가 불거져 직선제와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53만 명이 가두시위를 벌였고 이후에도 매년 7월 1일에는 10만 명 정도가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반국가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국가안전법’을 중국이 주도해 제정하려다 위기가 겹치기도 했다. 2003년 7월에는 이 법 제정에 반대하며 홍콩 시민 5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홍콩 판 ‘피플 파워’ 시위로 법안은 폐기됐고 각료 3명이 문책을 받아 사임했다.

 이러한 반발을 의식해 둥젠화(董建華) 초대 행정장관의 잔여 임기를 맡게 된 도널드 창 행정장관은 장관 및 입법회 선거위원단 확대 개편 등을 요지로 하는 정치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범민주파를 중심으로 한 입법회 의원들은 이 개혁안을 부결시킨 뒤 대규모 시민 집회를 통해 직선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도록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홍콩 정부는 “홍콩 민주화는 주어진 여건에 맞춰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다. 속도를 빨리 내자는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홍콩 자치에 관한 모법인 ‘기본법’ 해석권을 손에 쥐고 있는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올해 6일 베이징에서 “홍콩의 자치권은 홍콩 고유의 것이 아니라 중앙이 부여한 것”이라고 말해 여전히 홍콩 민주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홍콩 회귀 10주년인 7월 1일 홍콩 범 민주파는 직선제 요구 가두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과 홍콩 정부는 기념일에 맞춰 대대적인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갈등적 요소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마틴 리 민주당 의원은 “전 세계가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더 이상 민주화의 물길을 막을 수는 없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자유화의 문제는 중국으로 돌아간 홍콩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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