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위주 「교통 사고 특례법」|민병재 <경남 남해구 고현면 탑동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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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현행 교통 사고 처리 특례법은 급증하는 교통 사고를 사안의 경중에 비추어 신속하게 처리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제정·운용되고 있으나 「물질 문명 우선」에 밀려 인간성의 실종을 그대로 용인하고 있는 악법이다.
법의 주요 골자는 모든 차의 교통으로 인한 사고가 중과실 위반 행위 8개 항목 (중앙선 침범 등)에 해당되지 않고 사망 또는 도주의 사실이 없으며 가해 차량이 종합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여 피해자 보상 문제는 보험사가 대행하도록 되어 있다.
한 예로 지난 10월22일 오후2시쯤 경남 남해군 창선면 도선장에서 80세 할머니가 여객 버스 후미 짐칸에 짐을 싣고 있던 중 운전사 부주의로 버스가 후진하는 바람에 전치 8주 상당의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중인데 그동안 가해 운전사는 한번도 들르지 않았고 가해 버스 회사측에서도 과장이라는 사람이 병원에 한번 찾아와 1만원을 주고 갔을 뿐이라는 것이다.
50대의 부부가 그 할머니를 봉양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데 하나뿐인 며느리가 시어머니 병간호하는 바람에 가을일을 완전치 망쳐놓았다.
준법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법의 조문에 충실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제정된 취지, 즉 법의 정신에 투철 하자는 것이지 법 자체가 인간성마저 구속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의의 피해를 당해 장애인이 되고 고생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손실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해자가 법조문을 들어 모든 책임을 보험 회사에 일임해 버리고 피해자 본인의 고통은 물론 그 가족들이 입는 막대한 간접 손실에 대해서 가해자나 보험 회사측 모두 나 몰라라 해도 무방한 비인간적인 악법은 마땅히 개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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