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굿바이 '87년 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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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나는 ‘잘살아 보세’. 박 대통령이 주도한 근대화·산업화다.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벌어져 초가집들이 헐려 나갔다. 국산품 장려운동이 벌어져 양담배를 피우면 잡아갔다. 학생들 도시락에 보리쌀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교사들이 검사도 했다. 공무원과 군인, 학생들은 식목일에 젓가락 들고 산에 송충이를 잡으러 갔다. 기업도 대학도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 시절이 근 20년간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우스꽝스럽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반만년 가난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는 박 대통령의 주장은 꽤나 호소력 있었다. 게다가 그 목표는 성공적으로 달성됐다. 50대 이상 중·장년층 상당수가 ‘박정희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들은 박 대통령과 함께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성취했다. 
 두 번째 시대정신은 1987년에 극적으로 분출됐다. 박정희 정권 때 건너뛰었던 정치적 자유, 억압되었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다. 사람들은 그걸 ‘민주화’라고 불렀다. 87년의 ‘6·10 항쟁’과 뒤따라 터져나온 ‘노동자 대투쟁’이 상징이었다. 그때 이후 논쟁의 핵심은 언제나 민주화가 차지했다. ‘박정희와 근대화’는 유행 지난 옷처럼 역사의 장롱 속에 깊숙이 처박혔다.

 그렇게 출범한 ‘1987년 체제’가 올해로 정확히 20년이 됐다. 공도 많고 과도 있지만 본격적인 평가는 역사가들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과거 ‘근대화’가 ‘민주화’에 바통을 넘겼듯이 이젠 새로운 시대정신이 ‘민주화’를 극복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주화를 외치는 조직과 단체, 정치권에 대한 ‘피로 현상’과 함께다.

 우선 노동운동.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겁을 냈지만 노동자들의 주장에 공감도 했다. 오랫동안 억압됐던 생존권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 민주화와 더불어 노조의 권익은 크게 신장됐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민적 거부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6일 조합원 14만 명의 금속노조가 파업에 돌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해서다.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배부르니까 저런다”는 거다. 걸핏하면 파업하는 현대차, 신의 직장인 공기업 노조….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노동계만 그런 게 아니다. 학생운동은 80년대엔 사회 변혁의 선봉대였다. 하지만 요즘 대학가에선 운동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학생 70% 이상이 “민주화보다 경제성장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한때 열광적 지지를 받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열린우리당이 해체 과정을 밟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역사적 소임을 마무리해 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가끔 넘어지고 자빠졌지만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여기까지 왔다. 누구는 우리 과거사를 “부끄럽다”며 폄훼하지만 사실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 스토리다. 5000년 역사상 지금보다 자랑스럽게, 큰소리치며 살아본 적이 없다.

 올해는 대선의 해다. 차기 대통령은 근대화와 민주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그걸 구현해야 한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큰 임무와 과제가 있다. 국민이 보고 싶은 건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 희망과 비전이다. 누가 그걸 제시하려는가.

김종혁 사회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