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참가로 밤새운 국교교사 김용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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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신성한 한표」꼼꼼히 확인했죠”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후보들은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국민들은 본업에 전념해야겠지요.』
19일 서울 서대문을개표소에서 밤새워 개표업무를 마친 김용호씨(46·창서국교 교사)는 투표용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에 꼈던 골무를 벗으며 담담하게 『이제는 모두가 다시 하나가 될 때』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84년이후 선거때마다 단골로 동원된 개표 베테랑으로 2·12총선,13대대선 등 민주화의 격랑을 손끝으로 헤쳐온 사람이다.
이번 14대 대선에서는 고참이라는 이유로 개함·점검 대신 심사부를 맡아 「신성한 한표」가 제대로 분류됐는지 눈을 밝혔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요즘도 무효표가 간간이 나와 안타까워요.』
두명의 후보에 똑같이 기표됐거나 아예 기표하지 않는 등 신성한 주권이 빛을 잃는 경우가 간혹 있다는 것이다.
이들 두 후보에 기표하거나 경계선 한가운데 기표해 무효처리된 투표용지에선 비록 올바른 주권행사는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 임하는 투표자의 후보선택 어려움과 고뇌가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표용지는 동그라미 표시가 기표란 한가운데에 곱게 찍혀 있었고 행여 다른 칸에 전사될세라 꽉 접지않고 적당히 접혀있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엿보였다고 했다.
『이번 개표업무는 국민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그만큼 신경이 쓰였다』는 김 교사는 『부정시비 등 사고없이 끝난게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시민의식도 성숙했고 개표종사자들도 자부심을 갖고 일한만큼 과거처럼 개표부정시비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며 『후보나 국민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 김 교사가 받는 수당은 일당 이틀분 1만6천원에 이번부터 신설된 개표수당 1만4천원을 합한 3만원.
그리고 학교측에서는 피로를 감안,19일 하루 공가처리해 줬지만 김 교사는 수당이나 휴식보다 방학을 앞둔 학생들을 두고 교단을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요즘은 여 교사가 많아 예전에는 총각교사들이 전담했던 개표업무에 자신과 같은 고참교사도 차출된다』고 쓴 웃음을 지은 김 교사는 개표종사원 대부분이 현직교사인 점을 강조하며 『밤을 꼬박 새우는게 힘들기는 하지만 사회가 교사들을 그만큼 믿는다는 생각에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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