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내 낡은 자동차 … 철컥 철컥 로봇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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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해의 여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트랜스포머'는 '남자 아이들'을 위한 액션 블록버스터다. 인형보다 로봇을, 아파트보다 자동차를 더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 말이다.

눈치채셨겠지만, 이는 성별과 연령에 따른 구분이 아니다. 취향에 대한 일종의 통념이다. 다시 말해 숱하게 쏟아지는 자동차 신모델에 눈도 꿈쩍 안 하고, 로봇 따윈 코흘리개 시절에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면 설령 남자라도, 이 영화의 넘쳐나는 액션 도중에 자칫 지루한 하품을 토할 수 있다.

반대로 통념적인 '남자 아이들'취향의 관객이라면, '트랜스포머'는 새로운 유형의 블록버스터로 꽤 만족스럽다.

제목(원제 Transformers)이 뜻하는 대로 자동차에서 변신한 로봇들이 달리고, 구르고, 날고, 싸우면서 액션을 펼친다. 과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적 수준의 표현력으로 접했던 로봇액션을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실사 영화의 육중한 질감으로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데뷔작 '나쁜 녀석들'이래로 액션 연출에 빼어난 솜씨를 보여온 감독 마이클 베이는 로봇과 자동차, 이 두 남성 장난감을 재료로도 유감없는 수준의 액션을 구현해낸다.

곁가지가 많은 줄거리의 핵심을 가리자면, 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남달리 잘난 데 없는 고교생 샘(샤이아 라보프). 굳이 남다른 점을 찾자면 조상 중에 지난 세기말에 극지방을 탐험한 모험가 할아버지가 있다는 정도다. 16살에 운전면허를 따는 미국 청소년들의 관행대로 샘의 아버지는 첫 차를 사주는데, 한눈에도 낡디 낡은 중고차다.

그런데 어딘가 수상한 이 자동차, 실은 인간처럼 지능과 생명을 가진 외계의 변신로봇이란다. 샘은 극지방에 감춰둔 에너지원 '큐브'를 다시 찾아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나쁜 로봇들(디셉티콘)과 이를 저지하려는 좋은 로봇들(오토봇)이 벌이는 대결의 한가운데에 말려든다. 여기에 샘의 할아버지 덕분에 큐브의 정체를 진작부터 알고 있던 정부 비밀기관, 당장 디셉티콘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해야하는 국방부 등등이 등장해 양념을 친다.

줄거리가 단순한 만큼, 이 영화의 제맛은 주로 눈으로 봐야 아는 항목들이다. 자동차가 철컥철컥 로봇으로 변신하고, 추격전을 벌이고, 점점 대결과 폭발의 강도가 켜져 가면서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에 값을 한다. 사실 이런 영화라면, 이야기의 이음새에 드러나는 결점들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부질없다.

초반에 사막에서 로봇과 전투를 벌였던 부대원들이 후반부에 '왜' 굳이 샘의 조력자로 다시 등장해야 하는지, 그 수많은 직업군인들을 제치고 '왜' 하필 샘이 로봇들에 추격당하며 큐브를 들고 내달려야 하는지 등등 말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허점들을 '트랜스포머'는 눈덩이 굴리듯 커지는 액션의 가속도로 그냥 돌파해버리는 영화다.

'트랜스포머'의 출발점은 1980년대 미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끈 변신로봇 장난감이다. 이야기로 살을 붙여 그 사이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이번 같은 블록버스터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트랜스포머'는 '애들 장난감'에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첨단기술의 손길을 더해 다시 만들어낸 극장용 장난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등장하는 로봇마다 각각 이름과 약간의 개성이 부여돼있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다면, 극장 관람 후 추가지출 발생 가능성을 경계하시길. 28일 개봉. 12세 관람가.

주목! 이 장면

액션 외에 이 영화의 잔재미라면 유머다. 우리가 흔히 하는 대로, 외계로봇들도 인터넷 검색 한 방으로 샘의 소재를 알아낸다. 특히 부모의 눈치를 봐야하는 미성년자 샘의 입장 때문에 거대 로봇들이 샘의 집 곳곳에 궁상맞게 몸을 숨기는 장면이 재미있다. 남성성을 강조한 굵은 목소리로 상투적인 명분을 되뇌는 로봇들과 '영웅'이라기에는 지극히 보통 소년인 샘의 대비가 묘한 유머를 빚는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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