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조기유학> 실망도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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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어려도 유학 당사자가 가는 이유 찾아야
유학은 공부하는 당사자가 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7-8세 정도의 어린 나이일지라도 부모와 대화하며 유학가는 정당한 이유를 함께 찾도록 도와주자. 자기 스스로 유학의 필요성을 깨닫고 공부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에 대해 너무 큰 기대도 가지지 말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만큼 큰 법이며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학 후보지가 결정됐다면 사전에 답사를 다녀오는 게 좋으며 아이와 함께 다닐 학교를 방문해 본다면 좀 더 현실적으로 유학이 다가올 수 있다. 원정 답사를 그냥 관광버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소극적으로 둘러보면 수박 겉핥기나 다름없는 무의미한 답사가 되기 십상이다.
 
# 한국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을 갖춰야
유학와서도 한국의 교육 정책에 문제가 많아 할 수 없이 외국에 유학 왔다는 식으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 이는 유학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학생에게 좋지 않다. 당장의 유학 보다는 그 이후까지 생각하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즉 한국에서 못하는 것을 보충하는 차원이 아닌 ‘플러스 알파’의 개념으로 유학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 무조건 외국의 것이 좋다는 사대주의적 사고를 경계하자.
한국의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많이 제기하지만 이건 교사의 잘못도 학교의 잘못도 아니다. 이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며 일선의 교육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6.25의 잿더미 속에서 배고픈 60년대를 거쳐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은 교육의 탓이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의 교육이 아니었다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단기유학이든 장기 유학이든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조건 긍정적이어서도 안 되며 어느 정도 균형 있는, 모국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

# 글로벌 마인드로 미래 설계를
글로벌이란 말이 너무 흔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는 조기유학의 큰 목적이다. 재직 중인 UBC의 경우 세계 시민의식(Global Citizenship)이 전체 교양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은 ‘글로벌 교육’ 하면 영어만 생각하는데 영어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는다. 한국어만 해도 얼마든지 글로벌 한 마인드를 가진 아이로 키울 수 있다. 글로벌 마인드는 단지 국제 통용어인 영어가 아니라 세계평화, 환경보존, 봉사정신이라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부모들은 자녀들이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뭐든 100%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 사고력을 가진 아이,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를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시각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뛰어난 전문가들만 모인 좌담회를 봐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자신만의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유학 와서 명문대, 좋은 직장 같은 단기적 목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일간 단기적 목표가 달성된다면 장기적으로 보면 허무한 것이다. 글로벌 마인드로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는 학생은 반드시 뭔가를 성취한다.
 
# 창의성을 중시하는 북미대학
북미에 유학 오면 영어는 물론 문화적 차이를 상당히 느낀다. 한국이 서구화되었다고 하지만 제대로 서구화된 것 같지 않다. 막상 와서 느끼면 그 차이가 크며 문화 충격을 받는 학생들도 많다.
대학생이라면 스스로 생각하는 독립심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배우고 읽고 외우는 것은 될지 몰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해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플러스알파’가 한국 학생들은 부족하다. 많은 외국 교수들이 한국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공손하지만 자기 아이디어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에세이를 써도 서론ㆍ본론ㆍ결론식으로 과정과 배경을 중요시하지만 캐나다는 직설적인 에세이를 원한다. 한국은 입시형 논술에 익숙해져 이론적인 공식만을 따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식으로 인용하고 참고문헌 활용해 가며 논문을 쓴다면 여기선 표절에 걸린다. 이곳 대학은 창의성을 중요시한다. 한국에선 조교한테 논문을 쓰게 하는 것이 중한 죄로 생각하지 않지만 여기선 심각한 도덕성 결핍이다. 어디서 듣거나 자기 것이 아닌 내용은 구체적으로 책 페이지까지 밝혀야 한다.

# 좋아하는 일을 해라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좋은 점수를 쉽게 따려는 그릇된 욕심. 점수 잘 받으면 차 사준다는 그런 외적 동기보다 스스로에 의한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동기부여만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해낼 수 있는 힘을 준다.
캐나다는 왜 대학을 꼭 가려고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한국은 왜 대학에 안 가느냐고 묻는다. 본인 스스로의 관심 분야, 적성을 추구하게 해야 한다. 재능이 없는 아이를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 빌 게이츠의 성공은 ‘일(job)’이 아닌 자신의 ‘취미와 관심’이었기에 가능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추구하는 일을 하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하기 싫은 공부를 위해 중요한 대학시절 5-6년을 허비해서야 되겠는가.

/김효신 교수/▷이화여대 교육학과 졸업▷미국 하버드대 교육학 석·박사 ▷영국을 거쳐 캐나다 밴쿠버 사립학교에서 10여 년간 교사 활동▷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립대(UBC) 국제문화 커뮤니케이션 센터 학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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