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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은 돈 더 풀어 물가 올려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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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21면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전 총무상은 거침이 없다. 어떤 주제가 나오건 그의 입에선 정확한 통계치와 논리적이고 예리한 분석이 술술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상대방이 두 손 들게 하는 뚝심도 있다. 고이즈미 정권 시절 그는 ‘개혁 사령탑’으로 불렸지만 ‘다케나카 배싱(bashingㆍ때리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각종 저항세력의 반발도 심했다. 그럼에도 부실채권 처리, 우정(郵政) 민영화 등의 개혁작업을 이끌고 나간 것이나 고이즈미 총리가 그에게 5년5개월의 재임기간 내내 경제재정상, 금융상, 총무상을 맡기며 전적인 신뢰를 보낸 것 모두 그의 뚝심에서 비롯됐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게이오(慶應)대학 교수로 돌아간 그를 1년여 만에 만났다. 그는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 일본은행에 직격탄을 날리고 “현 내각에 개혁의지를 가진 장관이 없고 영 부실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한국에 대해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각종 규제로 보호를 받아 이익을 얻고 있는 세력들이 잔존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경제개혁 사령탑 다케나카 헤이조 前 총무상 인터뷰

인터뷰는 19일 도쿄 롯폰기힐스의 49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이제 끝난 것인가. 끝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뭔가.

“마침 지난주에 2006년도(2006년 4월∼2007년 3월)의 경제성장률(GDP) 통계가 나왔다. 실질성장률은 2.1%, 명목성장률은 1.4%다. 즉 GDP디플레이터가 -0.7%였다. 디플레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일 정부는 4년 전부터 ‘2006년도에는 디플레를 극복하고 명목성장률을 2%대로 올린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은행에 있다. 일본은행이 긴축정책을 취하며 자금공급을 줄이고 있어 그 결과로 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 일본의 정책금리 수준 0.5%는 국제적으로 봐도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전적으로 일본은행 책임이다. 이처럼 금리가 낮은 것은 일본은행 책임이다. 왜냐하면 일본은행이 제대로 물가상승 목표치를 1∼2%로 높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금리가 낮은 것이다. 금리가 낮기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것은 잘못이다. 금리가 낮은 이유는 물가가 낮은 데 있다. 따라서 물가를 먼저 올려주면 금리는 자연적으로 정상화된다. 물가를 올리지 않고 금리만 올리면 경제는 엉망이 된다. 따라서 돈을 풀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물가가 오른다.”

-요즘 일본 기업들은 실적이 매우 좋은데 임금은 올리질 않는다. 그래서 개인소비도
안 는다.

“2000년대 들어선 기업의 수익이 늘었지만 임금은 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를 보면 전혀 반대 양상이었다. 수익은 줄어드는데 임금만 올렸다. 노동분배율이 90년의 60%가량에서 90년대 말에는 80%가 됐다. 이런 나라는 없다. 임금을 90년대에 너무 올렸다. 이제 겨우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올리더라도 생산성 높은 이들만 올려야 한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은 도요타자동차도 기본급을 4년 연속 안 올리다 최근 들어 조금 올리는 등 임금을 억제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선 “도요타도 안 올리는데…”라며 임금 억제 필요성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의 경우 기본급을 안 올릴 뿐이지 보너스는 엄청 올렸다. 총액 기준으론 껑충 뛰었다. 임금구조가 바뀌었을 뿐이다. 고정비인 월급은 최대한 줄이고 변동비인 보너스로 보전해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개인소비를 생각할 때 경제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임금이 올라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산성이 오를 때 임금이 오르고, 이게 소비증가로 이어지는 게 선순환이다. 하지만 나는 설사 임금이 안 올라도 개인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고령화로 소비성향이 커지고 저축성향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제 저축국가가 아니다. 일본의 가계저축률은 6∼7%로, 평균 수준이다. 저축의 내용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동안은 55%가 은행 예금으로 갔다. 이런 나라는 없다. 미국은 10분의 1 수준이다. 이게 점차 ‘로(low) 리스크-로 리턴’에서 서서히 ‘미디엄(medium) 리스크-미디엄 리턴’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이 1505조 엔인데 1% 이율이 높아지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 일어난다. 15조 엔의 이익이 늘어나는 셈인데 이는 일본인이 1년간 내고 있는 소비세가 11조 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미국 경제는 부동산 버블이다 뭐다 하지만 기조는 튼튼하다고 본다. 조금은 주춤할 수 있지만 크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도 내년 베이징올림픽에다 2010년 상하이 국제엑스포가 있어 당분간은 강한 기조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부실채권이나 밸런스시트 조정을 언젠가는 해야 하는 큰 리스크가 있다. 중기적으로 조정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본 기업들도 그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발 쇼크가 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인가.

“일본이 금융 면에서 가장 큰 위기에 처했을 당시 부실채권 비율이 8.4%였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공식 통계가 10% 정도다. 실제는 그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조정이 시작되면 상당한 쇼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그런 조정을 거침으로써 중국 경제가 일본ㆍ한국ㆍ미국의 경제와 매우 깊이 결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결과적으로 중국발 쇼크는 있겠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그리고 그 극복을 통해 보다 강한 경제적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힘을 아시아 경제는 갖고 있다고 본다.”

-일본 기업들은 이제 완전히 근육질이 된 것인가.

“아직 근육질이 충분히 안 됐다. 과잉채무나 부실채권 등 ‘부정적 유산’이 없어졌을 뿐이다. 들떠 있을 게 아니라 보다 근육질로 나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컨대 은행산업만 봐도 수익ㆍ이익 모두 증가하고 있지만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총자산이익률(ROA)은 아직 미국ㆍ유럽에 비해 낮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중구조다. 삼성 같은 세계적 기업이 있는 반면 중소기업이 약하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또 일부 사람들이 규제로 보호받아 이익을 얻는 구조가 돼 있는 것도 한국과 일본이 갖는 공통적인 문제다. 그래선 경제 발전이 안 된다.”

-한국의 경우 은행이 외자계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내부 비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은행만큼은 잘 지켜내고 있는 것 아닌가.

“외국 자본이냐 국내 자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은행은 적어도 제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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