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밖엔 나라 구할 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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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5면에서 계속>
여하튼 해를 넘겨 환율을 인상한 탓에 김 장관은 국회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사전누설로 일부 대기업이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원들의 공격에 대해 김 장관은 『경제여건으로 보아 환율인상이 불가피한 것을 일부 기업들이 스스로 간파하고 미리 대비책을 세운 것이지 정부에서 일부러 누설했겠느냐』고 궁색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답변은 「자연누설론」으로 이름 붙여져 내막을 아는 이들간에 화젯거리가 댔다

<"유신 공격해선 안돼">
허화평·허삼수 두 허씨의 역할은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때 이들이 전두환 장군을 제외한 다른 11기 주체들을 능가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던 것은 틀림없다 .
신군부의 한 핵심이던 Q씨는 그 즈음 자신들의 분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 장군은 집권과정에서 양 허씨를 비롯한 충직한 대령급 후배들의 보필을 단단히 받았고, 그래서 그들을 친동생 이상으로 끔찍이 아꼈어요. 나는 그때가 운명적인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12·12사태 당시 전 사령관을 중심으로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육사16기)· 김진영 수경사33경비단장(17기), 보안사의 허화평 비서실장(17기) 허삼수 인사처장(17기)· 이학봉대공처장(18기)등 하나회의 영관급 회원들이 요직에 포전하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그 이전에 전 장군이 보안사에 부임하면서 양 허씨를 자기 측근으로 임명한 것도 다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0·26이 터지고 전 장군이 합수부장에 임명되면서부터는「김재규가 영웅이나 의사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우리들간에 형성돼 있었어요. 박 대통령의 유신체제에 대해서는 양론이 일었는데, 나는 근대화의 공적으로나 우리 「하나회」와의 인간적인 유대로 볼 때 유신을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공감을 얻어냈습니다. 다만 박 대통령을 진정으로 위하려면 새 마음 봉사단 같은 단체는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해 빈소로 가 근혜양에게 충고했지요.
봉사단과 관련해 말이 많았던 최태민 같은 자는 잡아다가 강원도로 쫓아버렸습니다 80년 봄 들어서 사회혼란은 가중되고, 국가관리는 엉망인데다 3김씨는 집권욕에 거의 이성을 잃고 있다고 우리는 보았습니다. 김종필씨는 박 대통령을 끌어안을 생각을 조금도 안하고, 반체제세력은 준동하고… 특히 최대통령이 그 혼란기에 중동방문을 한데 대해 우리내부에서는 「한심하다」는 반응이 주류였습니다. 당시 군을 안심시킬 조치를 아무도 취하지 않았어요.』
「서울의 봄」이니, 「춘내불사춘」이니 하던 당시 신 군부 깊숙한 내부에서 일고 있던 이 같은 분위기는 지금 들어도 섬뜩한 감이 있다 당시 영관급이던 Q씨는 『당초부터 정권을 잡으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보니」우리 밖에 나라를 구할 세력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사람 안 모일까 걱정">
『혁명은 계급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장성급 선배에게 중앙청으로 좀 오시라니까 당장 달려오더군요. 단순히 권력을 잡기 위해(전두환 장군이) 청와대로 가는 게 아니고 쉬지 않고 개혁해서 정치발전의 밑바탕을 만들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서로 격려했지요. 「부지런히 개혁을 하자. 그러고 나서 7년 후에 심판을 받자」고 다짐했습니다」
양 허씨를 비롯한 신 군부 핵심들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갖가지 초법적 조치로 분위기를 잡아 나갔다.
군인들의 정권에 민간인들이 쉽사리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은 공연한 기우였다.
『우리 당이 출범할 때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결과를 보니 내가 정치를 너무 몰랐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전을 펴놓으니 구름같이 모여 솎아내기 바빴어요 의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정치풍토가 흐려집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86년 발언).』
국보위를 출범시키고 민정당 창당작업을 하면서 신 군부는 여론을 우호적인 쪽으로 조성하기 위해 서울시내의 내노라 하는 점술가들을 「손」보기도 했다 한 인사는 『뒤숭숭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몇몇 점쟁이들이 차기 대권주자에 관해 온갖 점괘들을 내놓길래 혼내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란히 청와대 진입>
『보안사의 한 간부가 신통하다는 점술가를 잡아다 겁을 주었지요. 「야 임마. 내 얼굴 똑바로 보고 한번 말해봐.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 관상인지 말해 보란 말이야」 라고 말입니다. 그 점술가는 사색이었지요. 소문이 퍼졌는지 그 뒤부터는 점괘가 비교적 제대로(?)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신 군부의 영관급 「킹메어커」중 한명은 5공 정권이 당초의 그림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호랑이를 그리려 했으나 고양이가 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를 그리려 했든 프랑켄슈타인을 그리려 했든 정권의 출범과정은 민주헌정사의 한 다행으로 분류될 것이다 동시에 신 군부요인들이 내세운 상황논리는 두고두고 곱씹어볼 교훈이기도 하다. 80년 9월1일 제11대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허화평· 허삼수씨는 각각 청와대비서실 보좌관·사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보름쯤 후에는 허문도씨가 정무비서관으로 역시 청와대에 들어갔다. 『역시 3허』라는 세론이 뒤따랐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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