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속셈은 금속노조 구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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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5~29일로 예정된 현대차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저지 총파업에 정비본부 소속 노조원들이 노조간부들만의 파업으로 수위를 낮추기로 했다.

현대차노조 정비위원회는 22일 이상욱 현대차노조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일반 시민의 불편을 해소하면서 투쟁하는 것이 궁극적 승리 투쟁"이라며 "총파업 대신 대의원 등 간부노조원만 파업에 참여하겠다"고 통보했다. 정비위원회는 현대차 정비본부에서 근무하는 노조원들로 구성됐으며 전체 4만3000여 명 중 2700여 명이 소속돼 있고, 이 가운데 이번 파업에 동참하는 간부는 130여 명 수준이다.

그러나 정갑득 금속노조위원장은 조합원의 반대에도 파업을 강행할 계획이다. 이날 낮 시민단체 대표들과 울산시장실에서 만난 자리에서도

"저희들 방식(파업)이 아니면 울산 자동차산업이 망한다"는 입장만을 강조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국민이 이만큼 자제를 호소하고 있어 (파업 강행을) 재고해 달라"고 했지만 정 위원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정 위원장은 파업을 철회할 수 없는 이유로 '조직 와해'를 들었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 산별노조(금속노조)로 전환했는데 상급단체인 산별노조의 결정을 바로 철회하면 금속노조는 물론 현대차노조도 와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현대차노조, 왜 금속노조 따르나=금속노조의 지부인 현대차노조는 지부단위에서는 파업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자체규약에 '조합산하 조직은 조합 의결기관에서 결정한 쟁의를 반드시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대의원대회에서 파업 여부를 결정하면 지부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의결기관의 결의를 거부하면 이상욱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제명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22일 오전 7시까지 열린 현대차노조 임시대위원대회에서 한 대의원이 파업 재고를 안건으로 올리자 거부했다. 그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사안이어서, 이를 재고하자는 안건은 지부 대의원대회에 상정할 수 있는 요건이 안 된다"며 일축했다.

또 다른 사정도 있다. 금속노조의 산파 역인 현대차노조의 책임감이다. 현대차노조는 지난해 최대 목표였던 '산별노조 건설'을 내걸었다. 지난해 6월 조합원 찬반투표로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가입이 결정되자 현대차노조는 금속노조의 규약을 뜯어고쳤다. 그러면서 현대차 노조 출신이 금속노조에 진출했다. 현재 40명 선인 금속노조 집행부 간부 중 정갑득 위원장 등 10명이 현대차노조 간부 출신이다. 이 때문에 현대차노조는 금속노조와 인맥이 얽혀 있어 금속노조의 파업 지시를 거부하기 힘든 것이다.

◆"파업도시 울산의 오명을 씻고 싶다"=이날 정 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박 울산시장과 여러 시민단체는 금속노조에 파업 철회를 호소했다.

다음은 간담회 대화록.

▶정 위원장=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파업은 12시간뿐이다. 회사의 연간생산목표에 한 대라도 미달되면 책임지겠다.

▶박 시장= 명분이 뭐든 파업이 주는 절망적 이미지가 문제다. 이쯤 해서 물러서는 게 용기다. 시민들의 열망을 못 들어주나.

▶정 위원장=파업은 의결기구인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나도 어쩔 수 없다. 결정이 번복되면 내부 혼란은 물론 금속노조가 존폐위기에 처한다.

▶이두철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 공동의장= 왜 하필 울산에서만 파업이 자주 일어나야 하나. 오명을 씻고 싶다. 제발 도와 달라.

▶정 위원장=나도 23년 고향인 울산에 애정 많다. 노조 때문에 현대차가 해외공장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김경복 울산부인회장=어미된 심정으로 호소한다. 또 파업하면 울산경제가 결딴난다. 내 자식 일자리 잃는 고통도 겁난다. 자제해 달라. 그러면 노조가 인기를 얻는다.

▶정 위원장=우리 방식(파업)이 아니면 울산의 자동차산업이 망하고 죽음의 도시가 된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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