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싹 바꾸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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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일요일엔 택시를 이용한다. 밑바닥 민심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최근 그는 요금을 받지 않겠다는 택시기사들을 더러 만난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예뻐서가 아니라 잘 좀 해보라는 격려 차원에서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崔대표는 일요일인 28일에도 택시를 이용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속의 기사는 崔대표에게 한나라당의 대대적 변신을 주문했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싹 바꿔버리라"는 얘기였다. 그는 밤 늦게까지 그 말을 되씹으며 29일 발표할 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崔대표는 사실 그때까지 공천심사위원장에 DJ정권 시절 검찰 항명파동의 주인공인 심재륜 전 고검장을 생각해 왔다. 물갈이 수준이 아니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沈전고검장이 崔대표의 간곡한 부탁을 끝내 고사해 이 카드는 무산됐다. 대신 崔대표는 이미 한나라당 입당을 약속한 두 명의 외부인사와 대외인사영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문수 의원 중 한 명을 공천심사위원장에 임명키로 마음을 굳혔다.

특히 崔대표가 위원장에 김문수 의원 기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듯 당내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격수 노릇을 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준비 중이다. 내년 총선 전 '제2 창당' 수준의 혁신적인 개편을 단행하고 당명도 고친다는 방침이다. 우선은 '늙은 정당'의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더럽다는 이미지도 씻어내기 위해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롭다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다.

최병렬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천이 끝나는 2월께 획기적인 공약 제시 등 당의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이벤트성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며 "좋은 이름이 있으면 한나라당이란 이름도 고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나라당은 예상을 뛰어 넘는 획기적인 공천 틀을 마련했다. 지난 26일 운영위에서 확정된 '공직후보자추천규정'이다.

공천심사위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 참신한 신예 발굴에 박차를 가하자는 게 골자다. 예컨대 유망한 신인과 여성에 대해선 경선을 거치지 않는 '특별배려'를 가능케 하자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이 규정에는 "공천 신청자는 반드시 지구당 위원장을 사퇴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포함됐다. 게다가 공천심사위에 여론 및 자격심사를 통한 공천배제 권한을 부여, 물갈이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공천 경선에서의 선거인단 구성이다. 선거인단의 대부분인 90%는 일반 국민으로 하고 10%만을 당원으로 충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원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더불어 당은 후보들의 자격심사를 강화해 ▶당적 이탈 변경자▶이중 당적자▶파렴치 전과자 등은 공천 대상에서 완전 제외키로 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 이런 저런 반발이 예상된다. 한편 공천심사위원으론 김형오.홍준표.박승국.이성헌.심규철.이방호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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