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여성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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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공장소에서 남녀의 성구별이 이뤄지는 곳은 화장실·목욕탕·이발소 정도다. 남녀간의 복장이 유니섹스 패션으로 바뀌듯 시속의 흐름에 따라 성역처럼 여겼던 미용원도 남자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뀌었다.
여성 전용의 성역중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데 비해 이제 새로운 성역이 다시 생기게 되었다. 절도청은 12월1일부터 수도권 전철에 여성 전용칸을 시범적으로 설치,운행키로 방침을 정했다.
찬반이 엇갈리는 여성 전용칸 설치가 과연 효과를 볼 것인가. 우선 설치동기에 대해선 수긍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밤낮 없이 벌어지는 전철속의 성추행을 막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다는 것이 여성들의 찬성쪽 입장이고,모든 남성들을 치한으로 몰아놓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성칸을 만들어 현실적 효과가 있겠느냐는게 반대쪽의 원망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철로 출·퇴근 하는 직장여성이나 여학생들 입장에서 본다면 매일 매일이 고통이고 지옥철일 것이다. 남성들이 모두 치한이냐고 대들지만 당하는 여성으로서는 치한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연약한 여성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자는데 굳이 외국의 사례만 중요한가 하고 따질 수 있다.
기왕 여성 전용칸을 설치할 바엔 보다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는 계획을 세워야할 것이다. 먼저 전철을 움직이는 철도청과 서울시가 손발을 맞춰야 한다. 지상철을 관할하는 철도청은 찬성이고 지하철을 관장하는 서울시는 반대하면 지상에서는 여성 전용칸이 인정되고 지하로 들어가면 여성칸이 사라진다는 모순을 안게된다.
시행안에 따르면 러시아워인 오전 6시30분부터 9시까지 첫칸과 맨 뒤칸을 여성칸으로 운행한다고 한다. 여성 보호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취객이나 불량배의 행패가 예상되는 밤늦은 시간에도 실시할 수 있지 않은가.
또 예컨대 10량중 2량만 여성 전용칸으로 하면 나머지 8량의 혼성칸에 탄 여성은 치한을 용인하는 꼴이 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 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지하철이 지옥철로 바뀌게된 근본적인 문제를 여성 전용칸 실시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만 해결하려 들지말고 전동차의 대수를 늘리고 노선을 확장하는 본질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여성 전용칸은 다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의 임시방편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할 것이다.<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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